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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나주 나(羅)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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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주 나(羅)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나주나씨
성씨 나(羅)
작품명 도약과 번영
조각가 라영태
조형물번호 229

먼저 나주나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 전체의 형상은 돋아나는 한 포기의 싹과 조선시대 관문의 관모의 형태로 5개의 기둥형상은 5대 파조 자손을 의미합니다. 기둥형상은 학의 형태를 디자인한 것으로 학은 문관을 의미하고, 윗부분의 날카로운 부분을 칼을 표현하였으며 문무를 의미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나주나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나주나씨 시조는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송나라가 멸망해 전라도 여황현(현 광주)에 정착한 나부(羅富)공이며, 고려조에서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의 직책을 받았습니다.

 

1世 나득규(羅得虬), 2世 나중윤(羅仲潤), 3세 나송기(羅松奇)에 이어, 4世 나수영(羅守永)이 나위, 나계, 나석, 나세, 나원 5형제를 두어 5대 파조가 되었습니다. 첫째 나위(羅位)는 호조전서를 제수받았으며(전서공파), 후손 나용환, 나인협은 3.1 독립운동의 지도자였죠.

둘째 나계(羅桂)는 중서시랑을 지냈으며(시랑공파), 후손들은 교육계에 다수 진출했습니다. 셋째 나석(羅碩)은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으며(금양군파), 6세 나중우(羅仲佑)는 이태조가 우의정에 불러도 응하지 않은 고려 충신이었죠.

넷째 나세(羅世)는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으며(연안군파), 고려 우왕 때 해도원수로서 심덕구, 최무선과 함께 진포(현 충남 서천)에서 왜선 500척을 완파하는 무공을 세웠습니다.

다섯째 나원(羅源)은 사온서직장 동정을 지냈으며(직장공파), 13세 나금호의 자 · 손 3대에 2충 2효 4열 여덟 분이 정려되었고, 특히 나덕헌(羅德憲)은 정조대왕께서 충렬시호와 부조묘 건립 교지를 내린 충신이었죠.

시조 나부(羅富)공의 후예들은 학행덕업이 근 천년동안 끊이지 아니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분야 등에서 많은 활동가들을 배출하여 국가 사회발전에 공헌하고 있으며, 그 후손들이 13만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나주나씨는 96,018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MFtj5iYgWczjej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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