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옥천 육(陸)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옥천 육씨
성씨 육(陸)
작품명 우리는 하나
조각가 조인혁
조형물번호 222
먼저 옥천육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옥천육씨의 시조 4인 덕곡공, 공주목사공, 순찰사공, 낭장공의 형상을 기리기 위한 형상입니다. 4인의 인체를 모티브한 강강수월래의 형태로 육씨의 단합된 모습과 후손들의 화합과 안녕을 염원하는 뜻으로 제작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옥천육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옥천육씨(沃川陸氏)의 시조 관성군 육보(陸普)는 중국 후당(後唐) 명종 때 선공(宣公) 육지(陸贄)의 후손으로 절강성 소흥부에서 태어났으며, 신라 경순왕 원년 927년에 왕명을 받고 문학전례지신 팔학사의 수장(首長)으로 이 땅에 와서 학문과 예절을 가르쳐 명망이 높기에 경순왕이 총애하여 부마(駙馬)로 삼고 관성군(管城郡)에 봉하여 그 후손들이 관성에 살게 됨으로써 육씨의 관향(貫鄕)이 되었습니다.(관성은 옥천의 옛 지명).
고려 충렬왕 때 1世 육인단(仁端)은 벼슬이 주부(主簿), 2世 육희가(希賈)는 검한성(儉漢城), 3世 육거원(巨遠)은 중낭장(中郎將)이 되어 세계를 이어 왔으며, 그의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고 가문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장남 덕곡공 육려(麗)는 5도관찰사(장수 압계서원 유림에서 봉향), 차남 목사공 육항(沆)은 공주 목사, 3남 순찰사공 육비(埤)는 경상도 순찰사, 4남 낭장공 육수(綏)는 이조참판이 되었고, 5남 육태귀(台貴)도 일품관(一品官)이 되었으나 후손이 없으므로 번성한 4형제들의 별호와 직함에 따라 4파조(四派組)로 분파하여 세거하게 되었으며, 근세에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로 인하여 옥천육씨 가문이 더욱 널리 알려지고 후손이 번창하고 있음은 선대들의 유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옥천육씨의 인구는 21,410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6ipzIqqZtlPOb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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