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주 안(安)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광주 안씨
성씨 안(安)
작품명 안씨의 총서(叢書)
조각가 안의종
조형물번호 220
먼저 광주안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광주안씨는 정충대절의 충신과 학문덕행의 학자와 공신을 배출한 문무겸비의 가문이죠. 이 작품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교지 형태로서 선조께서 조정에 나아가 진충보국 하셨던 충정을 표현하였으며, 좌측에는 대나무, 우측에는 매화를 두어 선비 정신을 상징화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광주안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조선 영조 15년, 서기 1739년 발간된 광주안씨세보(廣州安氏世譜, 己未大同譜)에 시조는 고려 태조 때의 안방걸(安邦傑)이며 경기 광주에서 읍인(邑人)이 반란을 일으키자 창의토평한 공으로 대장군이 되고 광주군(廣州君)에 봉하여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기 1170년경 전중시어사 안유(安綏)가 안찰사로 경남 함안(咸安)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안이대촌(安李大村, 安仁村)에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시조 이하 13世의 묘는 소재를 알 수 없어 함안군 가야읍 선왕동 봉산재(蓬山齎)에 설단향사하고 시어사공 이하 4代는 삼봉산록(三蓬山麓) 건좌(乾坐)에, 20世까지는 안령사(按嶺祠)에 모셔져있습니다.
이부총랑 안정(安禎)의 후손은 경남 김해에, 고려의 멸망으로 탁질종신한 중랑장 안국주(安國柱)의 후손은 함안에, 조선 태조 때 최초로 청백리에 녹선된 사간공(思簡公) 안성(安省)의 후손은 광주에, 전농시판사 안몽득(安夢得)의 후손은 조선 태종 때 의령(宜寧)에, 상호군(上護軍) 안충(安沖)의 후손은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으로 종신하고 천안에 자리를 잡았으며, 위위주부 안창(安昌)의 후손은 조선 단종 계유정란 직후 밀양으로 이거하였으니 이들은 여섯 파의 중시조입니다. 후손들은 평소 학문을 연마하고 국난때는 출정하여 나라를 지켰으며, 학자와 공신들의 유적이 전해집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광주안씨의 인구는 48,033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vwTuCGdHfrHSm7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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