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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풍산 홍(洪)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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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풍산 홍(洪)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풍산홍씨
성씨홍(洪)
작품명풍산의 혼(魂)
조각가홍경태
조형물번호200

먼저 풍산홍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3면이 H자로 우뚝 서있는 이 조형물은 마치 선비를 나타내는 풍산홍씨의 기개와 대나무처럼 꺾이지 않는 절개를 나타냅니다.

풍산홍씨는 모당공계(경기 서울), 만응공계(경상도), 남평공계(호남) 3개의 문중으로 이루어져 있죠. H자로 삼각형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3개의 문중이 손을 서로 맞잡고 화합을 나타내는 형상입니다.

이는 각 문중이 하나로 힘을 합쳐 앞으로 무궁한 발전과 명문가의 위상을 떨치자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풍산홍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풍산홍씨는 고려 고종 29년(1242년) 문과 장원 급제한 국학직학을 지낸 홍지경(洪之慶)은 관향(貫鄕)을 안동 풍산으로 풍산홍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2세 홍애(崖)는 도첨의사인으로 고려 12대 문장가였죠. 3세 홍유(侑)는 삼관 대제학, 4세 홍연(演)과 홍준(浚)도 대제학에 올랐습니다. 5세 홍구(龜)는 랑장에 홍보(保)는 직제학을 역임했죠. 6세 홍이(伊)는 현령, 홍의(儀)는 생원, 홍숙(淑)은 사정, 홍재(載)는 대제학에 올랐습니다.

이 후 3대(三代)를 불사이군의 유지로 조선 창업에 등을 돌려 초야에 묻혀 지냈으나, 임난(壬亂) 수습에 공이 큰 10세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이 선조 11년 전시(殿試)에 장원 대사헌이 되었죠.

풍산홍씨의 영화는 정조조에 일세를 주름잡던 10년세도의 홍국영(洪國榮)과 선조의 따님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洪柱元),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정조와 원빈홍씨, 정조의 따님 숙선옹주와 영명위 홍현주(洪顯柱)등 풍산홍씨와 왕실의 국혼(國婚)은 누대를 거쳐 이어졌습니다.

또한 풍산홍씨는 호당(湖堂) 9명, 문형(문형) 8명, 청백리(淸白吏) 6명, 정승(政丞) 5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성관(姓貫)중 문과급제자 대비 1순위에 오른 명문대가로 성장하였죠.

그중 이계 홍양호(洪良浩), 연천 홍석주(洪奭周)등 대학자와 저술가(130여종 문집, 300여종 저술)를 배출했죠. 한국천주교 최초 수덕자 농은 홍유한(洪儒漢), 경술국치에 분을 못이겨 순절한 홍범식(洪範植),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홍진(洪震),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洪命熹), 민권 운동가 홍남순(洪南淳)
변호사 등이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풍산홍씨의 인구는 44,594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0ZvND_vgOk?si=g7GXy-5OAKsXOu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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