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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함평 정(鄭)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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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함평 정(鄭)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함평 정씨
성씨 정(鄭)
작품명 조화와 번영
조각가 안의종
조형물번호 180

 

먼저 함평정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의 상단부분은 태양과 산, 들, 호수 등의 우주를 나타내고 있으며, 중간부분의 몸통은 우주의 氣를 이 땅의 후손에 내리는 것을 의미하며, 밑 부분은 후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주와 인간의 조화를 이루면서 후손의 번영을 뜻하고 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함평정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평정씨 시조 정언겸(鄭彦謙)은 신라개국공신이며 육부촌장 중 진지촌장인 지백호(智佰虎)의 38세손입니다. 시조는 고려 인종 때 병부상서 문하시중을 역임하신 정언겸(彦謙)입니다. 그는 1126년(인종 4년) 이자겸(李資謙)의 난이 일어나자 모평(牟平:함평(咸平)의 옛이름)에 은거하여 본관을 함평(咸平)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습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언겸(彦謙)의 아들 정형(炯)이 평장사를 지냈고, 손자 정현수(賢守)는 문하시중으로 영풍부원군(永豊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그 밖에 예부상서를 지낸 정신량(臣良)과 병부상서 정공민(恭敏)이 유명했으며, 정함(緘)은 문하시중으로 함성군(咸城君)에 봉군되어 대제학 정을룡(乙龍)과 함께 고려에서 가문을 빛냈습니다.

 

조선조에 와서는 호조전서 정지유(知遊)와 사헌부지평을 역임한 정구명(耈明)이 선조의 뒤를 이어 나라에 충성하고 명문의 대를 이어 나왔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함평정씨의 인구는 6,338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PyFhufftkKcIG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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