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평 이(李)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부평 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합
조각가 김형근
조형물번호 178
먼저 부평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부평이씨 문중이 하나 되는 모습과 두 손 모아 문중을 받들어 모신다는 기본 컨셉으로 작품을 구상하였습니다. 조형물의 위쪽 모아진 형상은 부평이씨 문중이 단결되고 화합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고, 좌우측으로 두 개의 형상은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로 손의 모습입니다.
그럼 이제 부평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부평이씨는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를 거쳐 부평부로 개칭된 계양산 일대에 본거지를 두고 옛 수안, 동성, 통진, 김포 등 네 개의 현을 통치한 호족 군장인 이희목(李希穆)을 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태조 왕건의 고려왕조 창업에 적극 협조한 공으로 태조는 공을 고려개국벽상공신에 책봉하고 삼중대광으로 태사의 벼슬을 내렸다. 시호는 충민(忠敏)입니다.
시조 충민공의 증손인 문충공(文忠公) 이정공(李靖恭)과 현손인 장숙공(莊肅公) 이위(李瑋)께서 부자분이 이어서 문하시중을 지내시고 현손인 이숙(李璹)과 이순(李珣) 두 형제분이 참지정사와 문하평장사를 지냄으로써 고려시대 문벌귀족가문을 이루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6조(六曹)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된 충숙공 이세화(忠肅公 李世華)를 비롯하여, 도승지와 대사헌을 지내고 공조, 형조, 호조, 예서의 판서를 역임하신 효정공 이정제(孝貞公 李廷濟)가 있습니다.
그리고 병조, 형조, 예조의 판서와 한성판윤을 지내신 충희공 이익원(忠僖公 李翼元) 등 문중을 더욱 빛나게 한 선조들의 유업이 있어, 그 후손들이 문중의 종훈인 충효청겸(忠孝淸謙)의 정신을 대대로 면면히 계승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문충공은 부평백(富平伯)에 봉해짐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부평으로 삼았는데, 940년 지방제도를 개혁할 때 장제군(長堤郡)이 수주(樹州)로 승격되어 개경 근교의 웅읍(雄邑)이 되면서 부평이씨가 고려 초에 수주이씨(樹州李氏)가 된 계기가 되었죠(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부평이씨의 인구는 6,789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Xp6UX3OVUJi9CCT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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