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야성 송(宋)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야성 송씨
성씨 송(宋)
작품명 충 · 효 - 滿 開
조각가 전자선
조형물번호 157
먼저 야성송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충절과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조들의 업적을 후손들이 존경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상징화 하였습니다.
좌우 기둥형태는 선대와 후대의 공존과 상승구도로 형상화 하였으며, 상단의 작품형태는 5개파를 상징하여
선조들의 효와 충절이 만개한 꽃처럼 영원한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조형화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야성송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야성송씨의 본관(本貫)은 경남 합천 야로현으로 지금의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입니다. 시조 송맹영(宋孟英)이며 고려 목종 때 (997-1009) 간의대부의 품계와 총부의랑의 벼슬로 야성군(冶城君)으로 봉해지면서 식채로 받은 곳입니다. 야성은 야로의 고려 때 지명이죠.
창씨는 천년의 긴 역사를 가졌지만 유감스럽게도 상대(上代) 9세까지의 분산(墳山)을 실전하게 되어 유지로 알려진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에 1941년 봄 9세까지의 신위를 모신 제청과 망묘단비를 세워 구정재(九政齊)라 편액하고 한식에 세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10세에 이르러 절도공파(節度公派)와 감사공(監司公)파로 분파되니 절도공 분묘도 실전되어 칠곡 도촌에 망묘단비를 세우고 음력10월 1일 향제하고, 후손 사직공파는 칠곡에 첨정공파는 성주에 선략공파는 용인 등지에서 살고 있으며, 감사공이하 5세는 성주 회동의 선영하에 1656년 제실 추원당을 세우고 음력 10월 5일 묘제를 올리고 직장공파 후손은 성주에 상호 군공파는 산청에 대호군공파는 대구에 현령공파는 영주에 선전공파는 칠곡 등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야성송문은 11세 송길창(吉昌) 선조까지는 고려조에 12세 이후는 조선조에서 많은 대소과에 등과해서 여러 관직에 봉직했으며 15세 눌제(訥齊) 송석충(碩忠)은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동문수학 하면서, 한국 성리학 맥을 잇는데 기여를 했으며, 16세 야계(倻溪) 맹희규(希奎)는 투철한 충효 사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을사명현으로 후에 이조판서로 증직되고, 고종 8년에 충숙의 시호를 받고, 불천위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 후 구한 말 성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공을 세운 이력은 역사 사료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야성 송문의 조상들은 어느 문중 못지 않는 투철한 충효정신과 도덕을 몸소 실천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우리 후손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은 긍지가 있고, 긍지를 가진 사람은 훌륭한 조상을 모시고 있는 법이죠. 이제 우리는 훌륭한 조상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실천하고 후세에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여기 우리 조상에 얼을 담은 조형물 설치를 계기로 투철한 숭조정신과 혈친 돈목에 최선을 다해 야성송씨 문중의 무궁한 발전을 전 종원과 함께 기원합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야성송씨의 인구는 20,020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5LcxkxyS2skWaI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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