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개성 김(金)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1. 10.
728x90

오늘은 개성 김(金)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개성 김씨
성씨 김(金)
작품명 번영의 빛
조각가 김명신
조형물번호 158

먼저 개성김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개성김씨 조형물에서 과거 현대문명이 형성하기까지 개성김씨 문중은 지역에서의 역할과 위상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아가고 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대 1, 2단 사각은 문중의 뿌리깊은 역사를 상징하고, 작품의 본체 중심부 원형의 형상은 세상을 바르게 개혁하고자 하는 큰 의지를 보여 줌으로써 개성김씨 문중의 번창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중앙의 책의 형태는 문중의 위엄과 학자, 선비, 사대부 가문을 상징하죠. 또한, 상단의 빛의 문양은 문중의 비젼과 미래로의 도약을 나타내고 산과 태양의 형상으로, 미래에 대한 문중의 위엄과 선조들의 기상과 기개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개성김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개성김씨의 중시조는 고려 충의공 김용주(忠毅公 金龍珠)입니다. 용주공은 신라56대 경순대왕의 10세손입니다. 경순왕의 다섯째 아드님이자 태조왕건의 외손인 의성군 김석공은 의성김씨의 관시조가 되고 2세 일, 3세 흥술, 4세 국, 5세 경진, 6세 언미, 7세 습광, 8세 공우는 9세 용비, 용필, 용주 삼형제를 두었습니다.

장남 용비공과 차남 용필공은 의성김씨이며, 삼남 용주공은 개성김씨의 중시조입니다. 김용주는 약관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4대 왕에 걸쳐 수차례 여진족을 정벌한 공으로 충공신에 추대되었습니다. 이어 개성군에 봉해지고 정2품 평장사와 개성부사를 역임했습니다. 시호는 충의공이고 배우자는 무송유씨이며 묘소는 개성의 용수산에 있다고 하나 실전되었습니다. 후손들이 용주공의 이 같은 큰 공적을 기리면서 의성김씨에서 분적하여 개성김씨로 하고, 그 중시조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후손들은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자 설단하여, 1970년 3월부터 전북 군산시 나포면 옥곤리 산94번지에서 매년 음력 3월 17일에, 1980년 4월부터 충북 영동군 용산면 부릉리 산4-1번지에서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2009년 5월부터 대전광역시 대덕구 갈전동 산68번지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첫째 주일에 시제를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개성김씨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개성김씨의 인구는 22,793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E-G4A3RLhVVF8pqc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