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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평산 신(申)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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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산 신(申)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평산신씨

성씨신(申)
작품명역사의 문 - 화합의 상
조각가
조형물번호107

먼저 평산신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은 수평과 수직의 화강석 조화는 평산신씨의 굳건한 역사이며 화합으로 하나됨을 뜻하죠. 기러기와 활은 시조 장절공이 무인으로서 기예가 탁월했음을 상징하며 맑고 밝은 햇살은 평화와 진취적인 기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감을 뜻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평산신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는 신라 말에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난 신숭겸(申崇謙) 장군으로서 시호는 장절공(壯節)입니다. 시조를 모신 사당과 묘역은 춘천시에 소재하고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죠.

신 장군(申將軍)은 서기 918년에 태조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함으로써 개국원훈 대장군이 되었으며 또한 인품과 무예가 출중하여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평산(平山)에서 보여준 무인으로서의 기예는 태조 왕건이 감탄하여 平山申씨로 사성하였죠.

서기 927년 후백제와의 전쟁에서는 태조 왕건이 위급한 처지에 이르자 왕을 대신해서 죽음으로 그 충성심과 살신성인의 고결함을 높이 평가해서 원래 태조의 묘소로 잡아 놓은 곳을 신 장군의 예장지로 하였으며 종묘에 배향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죠.

이후 자손들이 번창하여 15세에 이르러 19개 파로 분파되어 대성을 이루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평산신씨는 시대를 초월하여 나라를 이끌어가는 文 · 武의 많은 인재와 국가사회발전에 공헌한 인사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근세에 와서도 조선시대의 여류 문인이자 화가이며 효와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겨레의 어머니라고 하는 신사임당이 있죠. 일제시대에는 항일독립투사요 건국 후에는 한국 민주발전의 초석을 이룬 교육자이며 정치인이기도 한 해공 신익희 선생 등이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한국 경제발전과 선진문화 발전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한 전 국무총리 신현확 등 각계각층으로 국가 사회발전에 공헌한 많은 분들을 배출한 명문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산신씨의 인구는 563,375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ymng_R9dKLI?si=CcH_LbNPCoYQLh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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