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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고령 신(申)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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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령 신(申)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고령신씨
성씨 신(申)
작품명 웅비(雄飛)
조각가 신동수
조형물번호 74

먼저 고령신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은 고령신(申)씨의 유서깊은 역사를 모태로 하여 뿌리공원 주위 환경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형적으로 제작한 작품이죠. 전체적 구도면에서 백두대간의 정기와 문(文), 무(武)의 주제를 바탕으로 구상하여 일반 기념비와는 차별을
두고 예술적 가치를 가미한 작품이죠.
산(山)형태의 덩어리는 백두대간의 기상을 형상화 하였고, 책(冊)형상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낸 많은 선조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산 윗부분의 원은 고령신씨를 상징하는 심볼 마크로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미래를 암시하며 산과 조화롭게 배치하여 작품의 세련미를 더했죠.

세부적인 내용면에서 뿌리 깊은 명문대가 고령신씨의 화합과 번성이 후세에 까지 긍지와 자부심으로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염원하는 의미의 큰 뜻을 담아 제작한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고령신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고령신씨는 시조 신성용(申成用)이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검교군기감을 지내면서 여러 대에 걸쳐 선조들이 살아온 경상북도 고령(高靈)을 본관으로 삼아 800여 년간 세계를 이어오는 동안 고려와 조선의 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선비, 학자와 장군과 재상을 배출한 명문거족이죠.
5세 순은공 신덕린(醇隱公 申德隣)이 고려 예의판서와 보문각제학을 역임하면서 명문가로 성장하였죠. 7세인 참판 신장(申檣)과 정언 신평(申枰), 감찰 신제(申梯) 3형제의 후손이 번성하여 가문을 중흥시켰고 3세 중 둘째인 시중공 신인기(申仁杞)의 자손이 시중공파로 오늘에 이르렀죠.

암헌공의 3남 문충공 보한재 신숙주(申叔舟)는 세종의 한글 창제에 공이 제일 컸으며, 대제학과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두번이나 역임했죠. 또한 외교와 국방전략에도 탁월했고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몽골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해동제국기와 보한재집 등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보한재의 5대손인 졸재 신식(申湜)의 따님은 정유재란 때 왜군을 죽이고 자결하여 조정에서 고령신씨의열문(高靈申氏義烈門)을 내렸죠. 조선 후기 화가 혜원 신윤복(申潤福)은 암헌공의 5남 귀래정 신말주(申末舟)의 11대손입니다.

감찰공의 7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큰 공을 세운 신여량(申汝樑), 신여극(申汝極), 신여정(申汝楨), 신여식(申汝&) 장군과 시중공의 11대손 신산원(申汕遠), 신호원(申湖遠)의 위국충정은 당시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근세에는 일본제국에게 36년간 나라를 빼앗겼을 때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과 혼을 바친 예관 신규식(申圭植)과 단재 신채호(申采浩)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한 것은 고령신씨의 기상을 잘 나타낸 자랑스러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문증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고령신씨의 인구는 129,718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jblFun2GlyZiMw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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