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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파주 염(廉)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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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주 염(廉)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파주염씨
성씨염(廉)
작품명기 원(祈願)
조각가 김희상
조형물번호70

먼저 파주염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조형물 상단의 원은 미래를 상징하는 태양이자 희망입니다. 또한 시조 염형명을 구심점으로 표현하였죠.
암석안의 형상은 중시조 곡성부원군 충경공 매헌
염제신과 세 아들 국파공, 동정공, 청강공의 빛나는
업적과 후손들의 무궁한 번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결정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파주염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파주염씨의 시조는 삼한공신(三韓功臣)이며 대사도(大司徒) 벼슬을 한 염형명(廉刑明)이며 관향은 파주이고 단일본입니다.
고려국 개국공신인 염상(廉相)과 재상을 역임한 염현(廉顯), 봉성태사까지 오르고 효문(孝文)을 시호로 받은 염신약(廉信若),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지내고 충정(忠靖) 시호를 받은 염승익(廉承益)이 있죠.
그리고 문하우정승과 문하좌정승을 역임하고 문하시중을 지낸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으로 충경(忠敬) 시호를 받은 매헌(梅軒) 염제신(廉悌臣)은 중시조이고 명문 거족으로 염문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공민왕이 친히 그린 충경공의 초상화는 보물1097호로 지정되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죠.
충경공의 세 아들 국파공(國坡公) 염국보(廉國寶)는
서성군(瑞城君)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고, 동정공(東亭公) 염흥방(廉興邦)은 서성군 대사성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습니다.

청강공(淸江公) 염정수(廉廷秀)도 사헌부 대사헌 우문관 대제학으로 고려국에서 가문의 중흥을 이룩하였죠.
그러나 1392년 역성혁명으로 조선국이 개국하자
염문의 후손들은 충신불사이군 정신으로 은둔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염걸(廉傑), 염서(廉瑞), 염홍립(廉弘立), 염말경(廉末卿), 염언상(廉彦祥) 장군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죠.
한말(韓末)항일투쟁에 몸바친 염온동(廉溫東) 열사도 염문의 후손이며 한국 사실주의 문단에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횡보 염상섭(廉想燮)도 염문의
자랑입니다.
이와같이 선조들의 역사적인 사실을 바로 알고,
후손들은 그 뜻을 이어 살아가는 목표를 바르게 하고 의지를 굳게 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파주염씨의 인구는 57,531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bGIJsqApRLs?si=6AupeTmx7KuOpf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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