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김씨(定山金氏) 시조, 김복수(金福壽), 정산김씨 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정산김씨(定山金氏)의 시조(始祖) 김복수(金福壽)는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15세손 김 한(金 漢)의 둘째 아들로 전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조선조(朝鮮朝)에서 현감(縣監)을 지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 : 연산군 때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신진사류가 훈구파에 의하여 화를 입은 사화)에 연루되어 정산(定山)으로 이거(移居)하였다가 다시 평안도(平安道)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광유(光酉)로 개명(改名)한 후 전 거주지였던 정산(定山)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한다.
정산(定山)은 충청남도(忠淸南道) 청양군(靑陽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백제(百濟) 때에는 열기(悅己)․두릉(豆陵)․윤성(尹城) 등으로 불리웠다가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열성(悅城)으로 고쳤으며, 고려(高麗) 처에 정산현(定山縣)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그후 시조(始祖) 복수(福壽)의 현손(玄孫) 덕립(德立)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장군(將軍)을 지냈으며, 그의 맏아들 득일(得鎰)은 통정대부(通政大夫 : 정3품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진모(鎭模)가 찰방(察訪 : 각 도의 역참을 관장하던 종6품의 외관직)을 역임하여 가문을 대표한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산 김씨(定山金氏)는 남한(南韓)에 64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정산김씨조상인물
김덕립(金德立)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충정장(忠靖將)을 지냈다.
김득일(金得鎰)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진모(金鎭模) 자(字)는 경안(景安). 1861년(철종 1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한 후 찰방(察訪)을 지냈다.
출처 : 한국성씨총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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