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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의성 김씨(義城金氏) 시조, 김석(金錫), 의성김씨 유래, 의성김씨 조상인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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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김씨(義城金氏) 시조, 김석(金錫), 의성김씨 유래, 의성김씨 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신라(新羅)의 왕족(王族) 의성김씨(義城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 아들 김 석(金 錫)이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외선(外孫)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의성(義城)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의성(義城)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중앙부(中央部)에 위치한 고장으로 삼한(三韓) 시대에 소문국(召文國)이었다. 그후 신라(新羅)에 병합되어 757(경적왕 16) 문소(聞韶)로 개칭되었다가 고려(高麗) 초에 지금의 의성(義城)으로 고쳐서 부르게 되었다.

 

한편 「의성김씨족보(義城金氏族譜)」에는 김 석(金 錫)이 경순왕의 넷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김씨 2천년사(新羅金氏二千年史)」․「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등의 문헌(文獻)과 「신라김씨분파연원도(新羅金氏分派淵源圖)」에는 다섯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개국(高麗開國)과 함께 문호(門戶)를 개방한 의성 김씨는 8세손 공우(公遇)의 아들대()에서 크게 번창하여 세도가문(勢道家門)의 기틀을 다졌는데, 장자(長子)인 용비(龍庇)가 태자 첨사(太子諂事 : 동궁에 속한 종 3품 벼슬)를 지냈고, 차자(次子) 용필(龍弼)은 수사공(守司空), 막내 용주(龍珠)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여 명성을 날렸다.

 

그외 고려에서 가문(家門)을 빛낸 인물(人物)로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훤()과 우왕(禑王) 때 도순문사(都巡問使) 광부(光富)가 유명했고, 공조 전서(工曺典書)를 지내고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발문(跋文)을 적은 거두(居斗)와 정당문학(政堂文學) 거익(居翼),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椿),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 평장사(平章事) () 등이 명문(名門)의 대()를 이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옥()의아들 현주(玄柱)가 찬성사(贊成事)와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 찬제와 사명에 관한 일을맡아보던 관청의 종 2품 으뜸 벼슬)에 이르렀고, 영렬(英烈)은 태종(太宗) 때 추충분의좌명공신(推忠奮義佐命功臣)에 올랐다.

 

존성(存誠)의 아들 효손(孝孫)은 세종(世宗) 때 병조참의(兵曺參議)를 거쳐 형조 및 예조의 참판(參判)을 지내고 대사헌(大司憲 : 사헌부의 종 2품 으뜸 벼슬)을 역임했으며, 을방(乙邦)은 고려(高麗)의 문신(文臣)으로 국운(國運)이 다하자 통곡하며 예안(禮安)의 요성산(邀聖山)으로 내려가 초당(草堂)을 짓고 은거(隱居)하였는데, 조선조(朝鮮朝)에서 수차에 걸쳐 벼슬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기리며 불취하자 그가 살던 마을을 둔번리(遁煩里)라 불렀다고 한다.

 

연산군(燕山君)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흠조(欽祖)는 중종반정(中宗反正) 후에 검열(檢閱)을 거쳐 단양(丹陽)․제주(濟州) 등지의 목사(牧使)를 역임한 후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으며, 윤석(潤石)은 중종(中宗) 때 등과(登科)하여 청종 부사(靑松府使)로 나갔다가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거쳐 대사성(大司成 : 유학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 3품 벼슬)에 올라 군수(郡守) 세우(世堣)와 함께 이름을 날렸다.

 

조선 중기(朝鮮中期)에서 명문(名門) 의성 김씨(義城金氏)를 더욱 빛낸 인물(人物)은 모재(慕齋) 안국(安國)과 사재(思齋) 정국(正國)의 형제를 들 수 있다.

 

안국(安國) 1478(성종 9) 참봉(參奉) ()의 맏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당대에 이름난 석학(碩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문하(門下)에사 학문(學問)을 닦고, 연산군(燕山君)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어 부수찬(副修撰)과 부교리(副校理)․예조 참의(禮曺參議)를 거쳐 경상도(慶尙道)와 전라도(全羅道)의 관찰사(觀察使)로 나가 각 향교(鄕校)에 「소학(小學)」을 권장하고 「벽온방(辟瘟方)」․「창진방(瘡疹方)」 등을 간인(刊印)하여 보급하였다.

 

특히 그는 천문(天文)․주역(周易)․농사(農事)․국문학(國文學)을 비롯한 성리학(性理學)에 정통하여 당시 유명했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쌍벽을 이루었고,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한때 파직되기도 했으나 예조(禮曺)와 병조(兵曺)의 판서(判書)를 거쳐 디사헌(大司憲)․대제학(大提學)․좌찬성(左贊成 : 의정부애 속해있던 종 1품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동몽성순(童蒙先習)」․「모재가훈(慕齋家訓)」을 비롯한 많은 저서(著書)를 남겼다.

 

안국(安國)의 아우인 사재(思齋) 정국(正國)은 김굉필(金宏弼)의 문하(門下)에서 글을읽고, 1509(중종 4)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호당(湖堂 : 젊고 재주있는 문신으로 임금의 특명을 받은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에 뽑혔으며, 이조 정랑(吏曺正郞)을 거쳐 관찰사(觀察使)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었고, 병조(兵曺)․예조(禮曺)․현조(刑曹)의 참판(參判)을 지낸 후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으며, 시문(詩文)이 당대에 뛰어났고, 의서(醫書)에 조예가 깊어 「성리대전절요(性理大全節要)」를 비롯한 훌륭한 저서(著書)를 많이 남겨 형과 함께 후세에 추앙받는 인물(人物)이 되었다.

 

한편 생원(生員) ()의 아들 5형제는 모두 당대에 이름난 거유(巨儒) 토계(退溪) 이 황(李 滉)의 문하(門下)에서 글을 읽고 문명(文名)을 날렸는데, 맏아들 극일(克一)은 내자시정(內資시正), 둘째 수일(守一)은 찰방(察訪)을 지냈으며, 셋째 명일(明一)은 효행(孝行)이 지극한 학자(學者)로 유명했다.

 

넷째 성일(誠一) 1568(선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정언(正言)을 거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부제학(副提學)․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역임하여 사성(司成)으로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일본(日本)으 다녀왔다. 그후 1592(선조 5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초유사(招諭使 : 난리가 일어났을 때 백성을 초유하는 일을 맡은 임시벼슬)로 참전하여 죽산(竹山)․함양(咸陽) 등지에서 의병(義兵)을 모아 진주성(晋州城)을사수하다가 진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성리학(性理學)에 능통했으며 사후(死後)에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으로 이조 판서(吏曺判書)에 추증되었다.

 

막내인 복일(復一)은 명종(明宗) 때 사마시(司馬試)를 겨처 1570(서조 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전적(典籍)․낭관(郎官)․전라도 어사(全羅道御使)를 거쳐 울산 군수(蔚山郡守)․창원 부사(昌原府使) 등을 역임하고, 성균관(成均館)의 사예(司藝)와 풍기 군수(豊基郡守)를 지냈다.

 

그밖의 인물(인물)로는 삼척 부사(三陟府使) 희삼(希參)의 아들 우옹(宇顒)이 명종(明宗)때 문과(文科)에 올라 선조(宣祖) 때 대사헌(大司憲)․병조 참판(兵曺參判) 등을 역임했고, 우굉(宇宏)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올라 숙종(肅宗) 때의 수찬(修撰) 여건(汝鍵), 대사헌(大司憲) 방건(邦杰)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한말(韓末)에 와서는 영수(永銖)가 장기 군수(長鬐郡守) 겸 경주 병마절제사(慶州兵馬節制使)에 재임시 선정(善政)으 베풀어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졌고, 철종(哲宗) 때 「북천가(北遷歌)」를 지어 국문학(國文學)하상 중요한 업적을 남긴 진형(鎭衡)과 예조 참판(禮曺參判) (土宏)이 명문(名門)의 대()를 이었다.

 

영남 유림(嶺南儒林)의 거두(巨頭) 흥락(興洛)은 수차에 걸쳐 벼슬에 등용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학문(學文)에만 전력하여 「서산집(西山集)」을 집필하였으며, 하락(河洛)은 의병대장(義兵大將)으로 무공(武功)을 세워,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원식(元植)․동삼(東三)․창숙(昌淑)․붕준(鵬濬)․황() 등고 함께 가문을 더욱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성 김씨(義城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287,46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은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www.sungssi.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1000000&gisa_idx=1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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