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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신천김씨(信川金氏) 시조, 김득추, 신천김씨 시조 조상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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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김씨(信川金氏) 시조, 김득추, 신천김씨 시조 조상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신천 김씨(信川金氏)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조선개국(朝鮮開國)에 공(功)을 세워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진 균(稛 : 경주 김씨 계림군 파조)의 7세손 김득추(金得秋)를 시조(始祖)로 한다.

그는 조선 세조(世祖)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된 종순(從舜)의 현손(玄孫)이며 상장군(上將軍) 만종(萬鐘)의 아들로 황해도 신천(信川)에 살다가 평북(平北) 가산군(嘉山郡)동북면(東北面)으로 이거(移居)한 후 선조(先祖)의 전세거지(前世居地)인 신천(信川)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신천(信川)은 황해도(黃海道) 중앙부(中央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단군신화(檀君神話)가 담긴 아사달산(阿斯達山) 당장경(唐藏京)이 있었던 곳이며, 한사군(漢四郡)을 거쳐 고구려(高句麗) 때 승산군(升山郡)이 되었다. 그후 고려초(高麗初)에는 신주(信州)라 하였고, 1413년(태종 13)에 신천(信川)으로 개칭되었다.

그후 득추(得秋)의 현손대(玄孫代)에 와서 경문(敬文)이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고 가산(嘉山)에서 태천(泰川)으로 옮겨살며 태천파(泰川派)를 이루었으며, 해문(海文)은 박천파(博川派)로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된 남혁(南赫)과 학자(學者) 형빈(瀅彬)이 뛰어났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 필량(弼良)은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한 사공(士公)과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한편 현방(顯邦)은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창의(倡義)하여 공(功)을 세우고 병절교위(秉節校尉)로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역임하여 신천 김씨(信川金氏)를 더욱더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신천 김씨(信川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5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신천김씨조상인물

김응량(金應良) 조선(朝鮮) 때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역임하였다.

김예인(金禮仁) 조선조(朝鮮朝)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경문(金敬文)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시택(金時澤) 조선에서 참봉(參奉)을 지냈다.

김남혁(金南赫) 조선(朝鮮) 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책록(冊錄)되었다.

김형빈(金瀅彬) 자(字)는 길선(吉善)조선 때의 학자(學者)였다.

김필량(金弼良)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사공(金士公) 조선조(朝鮮朝)에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현방(金顯邦) 자는 건백(建伯). 정묘호란(丁卯胡亂)때 창의(倡義)하여 병절교위(秉節校尉)․권지훈련원봉사(權智訓練院奉事)가 되었다.

출처 : 한국성씨총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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