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김씨시조(雪城金氏),김지선(金之宣),설성김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설성김씨(雪城金氏)의 시조 김지선(金之宣)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 아들인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후손이며, 개성 김씨(開城金氏)로 분적한 김용주(金龍珠)의 증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고려 때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 :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청의 종2품 벼슬)을 지내고 설성(雪城)에 세거하면서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으므로, 후손들이 개성김씨에서 분적하고 지선(之宣)을 일세조(一世祖)로 삼아 관향을 설성(雪城)으로 하게 되었다.
설성(雪城)은 충청북도 음성군과 경기도 이천군의 일부지역에 걸쳐있던 옛 지명으로 고구려의 노음죽현(奴音竹縣)을 신라에 와서 음죽(陰竹)으로 고쳐 개산(介山 : 죽산) 군(君)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와서는 음죽군(陰竹郡)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일부는 음성군에 속하고 나머지는 이천군에 합해졌다.
대표적인 인물
시조 지선(之宣)의 아들 원(源)이 고려조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상장군으로 무훈을 세우고 문원(文元)이란 시호를 하사 받았으며, 그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신주(臣株)는 사재감정을 역임하여 부자가 함께 명성을 떨쳤다.
판서(判書) 남보(南寶)의 후손에서는 학문으로 유명했던 수항(壽抗)과 판서(判書) 훈(壎)이 대표적이며, 교관(敎官) 치홍(致洪)은 의관(議官)을 지낸 영배(永配)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설성김씨는 전국에 2,16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설성김씨조상인물
김지선(金之宣) 고려에서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김원(金 源) 시호는 문원(文元), 고려때 상장군(上將軍)을 역임.
김신주(金臣柱) 고려에서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지냈다.
김남보(金南寶) 자는 문민(文敏), 호는 월촌(月村). 고려 때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김광국(金匡國) 자는 사훈(士勛). 조선에서 도사(都事)를 지냈다.
김온(金 榲) 자는 종린(宗璘). 조선 때 사과(司果)를 지냈다.
김수항(金壽抗) 자는 치안(致安), 호는 무송재(撫松齋).
조선 때의 학자(學者)였다.
김남의(金南義) 조선에서 사복시정(司僕시正)을 역임하였다.
김대수(金大壽) 자(字)는 기백(耆伯). 조선(朝鮮)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김득헌(金得憲) 자는 여림(汝霖). 조선떄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김서주(金瑞冑) 자는 휴백(休伯).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김규응(金奎應) 자는 중례(中禮), 호는 녹문(鹿門).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김훈(金 壎) 자는 경원(敬元), 호는 회당(晦堂), 시호는 문간(文簡).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치홍(金致洪) 자는 성숙(聲叔), 호는 후재(厚齋). 조선 때 교관(敎官)을 지냈다.
김영배(金永配) 자는 중명(仲命), 호는 농은(農隱), 조선 때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김남운(金南運) 자는 숙도(叔圖). 조선조에 성균진사(成均進士)였다.
김시최(金是最) 자는 선경(善卿). 조선조에 전적(典籍)을 역임하였다.
출처 : 한국성씨총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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