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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나주 김(金)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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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주김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나주김씨
성씨김(金)
작품명영원한 생명
조각가강관욱
조형물번호187

먼저 나주김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영원한 생명" 후손을 상징하는 새싹과 조상을 상징하는 감싸 안은 손모양의 구조물, 그리고 그를 반석처럼 떠받치는 좌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닥판석으로 그 성씨 연원을 표현하고 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나주김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천년을 이어온 나주김씨의 원 뿌리는 신라김씨 세조대왕 대보공(大甫公) 김알지(金閼智) 부터 신라 56대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계자(季子,막내아들) 황(湟)왕자의 가계로 이어집니다. 경순왕은 신라가 더 이상 나라를 존속할 수 없게 되자 가없는 경천순민의 대의를 따라 천년사직을 고려에 손국(遜國)하였죠.

이에 경순왕과 정비 죽방부인(竹房夫人) 박씨 사이에 태어난 황왕자는 태자 일(鎰 마의태자)과 함께 손국을 극력 반대하였으나 가납되지 않자 통곡하며 충절을 지켜, 고려에서 제수한 평장사를 받지 않고 처자를 속세에 두고 부왕의 영정을 모시고 가야산 법수사로 입산, 범공(梵空) 스님이 되어 해인사를 왕래 주석하다 종신하니 조정에서는 의영공(懿英公)의 시호를 내리고 개성 오룡산에 장례하였습니다.

국보 306호인 삼국유사 김부대왕(경순왕) 조(條)와 법수사지(法水寺址) 3층석 (보물1656호) 안내판에는 “경순왕의 계자 김황(金湟, 나주김씨의 비조)이 승려가 되어 법수사에 머물면서 해인사에 드나들며 산승으로 일생을 마쳤다”고 나주김씨의 근원을 밝히고 있는데에서 알 수 있죠.

고려는 김황 왕자의 장남 김운발(雲發)을 예우하며 문하시중 나주군(羅州君)으로 책봉하니 후손들은 관향을 나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묘소는 개성시 북쪽 오룡산에 소재해 있죠. 김운발의 아들 김중륜과 김인륜이 고려에서 각각 시중과 원윤에 올랐으며, 증손자 김원상은 예의판서를 역임하며 명성을 떨쳤죠.

판윤 김우해의 아들 김광은 보문각의 대제학을 지냈고, 후손 김수연은 병부상서를 지냈습니다. 1326년 충숙왕 13년 문과에 급제한 김대경은 대제학에 이르렀으며 문장이 당세에 뛰어나 동문선에 그의 시가 올랐죠. 그의 아들 김가구는 충목왕 때 예의판서를 지냈습니다.

조선조에 와서는 공조참의 김규와 형조참의 김경근이 유명했죠. 김경석은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고, 명종 때 호남 지방에 왜구가 침입하자 방어사로 5촌간인 김적과 함께 이를 격퇴시켰죠. 김충수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고 호조참판에 올랐죠. 정유재란 때는 부인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여 나라에서 그의 고향인 공주에 정문을 세우게 했습니다.

나주김씨는 고려조에 문과 급제자 2명, 조선조에 들어와 문과 8명, 무과 79명, 진사시 18명, 생원시 18명, 역과 9명 등의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나주김씨는 고려, 조선을 이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무현관과 동량지재는 물론 보국안민한 충신열사와 효자를 많이 배출한 삼한(三韓)의 올곧은 명문가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죠.

나주김씨의 천년을 이어온 정통성과 정체성을 다지며, 문중의 기상이 천추만대에 계계승승 이어지기를 소망하고 다짐하며 모든 종인의 뜻을 모아 뿌리공원에 나주김씨 연원비를 삼가 세웁니다.

https://youtu.be/fiIkzXnVwwU?si=M8i0twOa3jZx1L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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