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빈 이(李)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하빈 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화합과 번영
조각가 변유복
조형물번호 186
먼저 하빈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두 사람이 정답게 어깨동무하고 있죠. 인체를 직선과 평면으로 해석하여 단순화된 변형을 시도하였습니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성 있는 현대적 표현으로서 서로 의지하며, 특히 화목한 인간상을 주안으로 하여 하빈이씨 대종회의 종훈이라 할 수 있는 효도 화합 번영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하빈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하빈이씨(河濱李氏)의 시조는 이거(李琚)입니다. 고려 명종조 예부상서를 역임하였으며, 추증된 시호는 문정(文貞)이고, 나라에 공을 세워 하빈군(河濱君)으로 봉해졌습니다. 본관은 하빈(河濱)이며, 그 장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이죠.
시조의 손자는 이경(李瓊)이며 그의 호는 이우당(二憂堂)입니다. 그는 좌정언에 제수되었고, 그리고 효행이 높아서 화주목사에 제수되었죠. 그 후 자연의 산림 속에서 학문에 정진하다가 고려가 끝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의 충절정신으로 서기 1392년에 두문동에 들어갔으며, 고려 충신 두문동 72현이 되었다고 합니다. 맑고 곧은 그 정열 만고에 길이 빛나리라.
근세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짓밟음에 민족의사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만주에 항일광복을 위한 대전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1919년 11월 3일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으며, 조국광복을 위하여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이종암(李鍾岩,1896~1927)은 의열단부단장으로서 일제에 맞서 조국독립을 위해 공을 세운 민족의사였습니다. 자자손손 부모에게 효도하고, 서로 화합하여 영원무궁 번영하리라(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하빈이씨의 인구는 17,965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omHbeQA9e_EtI_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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