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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진주 소(蘇)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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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진주소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진주 소씨
성씨 소(蘇)
작품명 추원보본(追遠報本)
조각가 전범주
조형물번호 150

먼저 진주소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음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시원이 깊고 유구한 성씨인 진주소씨의 탄생과 뿌리의 터전을 상징, 표현하고 그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후손의 마음을 조형화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진주소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상고시대 적제(赤帝) 축융(祝融) 복해(復解)는 환국(桓國)의 제(帝)가 되어 풍주 배곡에 도읍을 정하고, 부소(扶蘇) 즉 무궁화를 심어 소(蘇)를 조성하였고, 소(蘇)를 자신의 성으로 삼았습니다.

그 후 부소갑(扶蘇岬) 도읍지에 남유소국(南有蘇國)을 세운 소풍(蘇豊) 태하공(太夏公)이 한.중 소씨의 조조(肇祖)로서, 그의 70세손 소백손(伯孫)이 경주로 내려와 서기전 209년에 진한(辰韓)을 건국하고 초대 도리 즉, 군주(都利 卽 君主)가 되었으며, 경주소씨(慶州蘇氏)의 시조인 사실이 진주소씨대종보(晉州蘇氏大宗譜)에 수록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 후 5대 도리 백공(白公) 소벌(蘇伐)이 서기전 69년 양산(楊山)에서 불구내(弗矩內)를 얻어 양육하여 박(朴)씨 성을 주고 임금으로 세워 서라벌을 출범시켰으며, 후에 신라국의 국조가 되었습니다. 소벌공의 25세손 소알천(閼川, 改諱 경 慶)은 서기 577년에 탄생하여 647년에 신라국 상대등(上大等)이 되었고, 660년 3월 3일 진주 돗골 즉, 오늘의 상대동(上大洞)으로 이거하셨으니, 이분이 진주소씨의 시조(始祖)입니다.

알천공의 아버지는 아찬(阿飡) 무은(武殷) 공, 어머니는 가미노부인(加美老夫人), 부인은 영아부인(玲阿夫人) 박(朴)씨이고, 둘째 동생이 화랑세속오계를 원광법사(圓光法師)로부터 전수받아 교육, 확산시킨 귀산(貴山) 공입니다.

소알천(蘇閼川)은 진주로 이거한 다음 해에 손자 소복서(福瑞)를 얻는 경사를 맞자 소경(蘇慶)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공의 후손들이 화랑출신(花郞出身)으로 크게 현달하여 통일신라시대에 9대9장군(九代九將軍), 5정승, 3문장을 배출하였고, 고려시대에는 9정승, 4장군을 배출하였습니다.

진주소씨는 우리 민족사와 함께하는 장구한 씨족사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화랑(新羅花郞)의 근간을 이룬 명문성씨입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주소씨의 인구는 48,836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dpg7fPHuiXVZj4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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