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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여산 송(宋)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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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산 송(宋)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여산송씨
성씨 : 송(宋)
작품명 : 결실(結實)
조각가 : 임 선 빈 (전 대전조각가협회회장)
조형물번호 : 11

먼저 여산송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여산송씨의 후손들이 협력하여 풍성한 결실을 맺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문중이 되길 기원하며, 무궁한 번영을 기약하는 미래지향적 희망을 나타내고 있죠.
시조 송유익과 두 형제를 중심의 씨알로 표현하여 생동감 있게 성장되어가는 진취적 기상을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여산송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여산 송씨는 역사상 많은 현신과 석학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민족이 국란을 당할때는 충절과 기개로서 민족수호에 사력을 다한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선조를 무수히 배출한 대성(大姓)이죠.선계(先系)는 송주은(宋柱殷)의 후손인 송자영(自英)이 슬하에 3형제를 두었는데 첫째가 여산(礪山)송씨의 시조인 송유익(惟翊)입니다.

둘째가 은진(恩津)송씨의 시조인 송천익(天翊)이며, 셋째인 송문익(文翊)이 서산(瑞山)송씨의 시조로서 우리나라 모든 송씨의 연원을 이룬 것이죠.
여산 송씨의 시조인 송유익(惟翊)은 고려 때 진사(進士)로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져 은천광록대부추밀원부사에 추증된 공신입니다.

고려후기 원종(元宗)때 4세손 정렬공 송송례(시호:貞烈公)가 왕정복고(王政復古)에 기여한 공으로 추성익대보리동덕좌명공신이란 호를 받고 여산의 옛지명 여량(礪良:여산의 옛지명)부원군에 봉해진걸 계기로 본관이 여산으로 정해졌죠.

시조 송유익(惟翊)의 묘소는 전북 익산시 여산면 문수동에 위치하여 매년 동지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죠. 원래 동지사(冬至祀)란 황실 또는 왕실에서만 지내는
궁중의 제사로 일반 사대부, 평민은 지낼수 없는 예제(禮祭)이죠. 정렬공의 충정에 원종(元宗)이 감탄하여 정렬공의 시조묘는 동지사를 모시게 조정에서 교지를 하사했죠.

더욱이 평민이나 사대부의 묘는 능(陵)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 우리 조상의 예법이나 오직 정렬공의 묘만이 공의 빛나는 위업을 기려 고려 충렬왕의 교지로서 홍능(洪陵)이라는 능칭(陵稱)을 하사 받음은 송문(宋門)의 자랑입니다.

여산송씨의 세계(世系)는 6세손에 이르러 원윤공파, 밀직공파, 소윤공파, 지신공파, 정가공파 등으로 나뉘어 5파가 세도가문의 기반을 닦았죠. 조선조에 중종반정시 정국공신 3등의 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송질, 영조의 탕평책에 적극 협조하여
국가기강 확립에 기여한 좌의정 송인명이 있습니다. 조선의 절신 송상현, 임진왜란때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전공을 세운 송여종, 송대립을 들수 있죠.

8대 문장가중 한 사람인 송익필, 성리학의 대가 송한필, 청백리(淸白吏) 송천희, 초·예서에 능하여 청나라 강희제의 찬탄을 받았다는 송일중이 있죠.조선의 항일운동가로서 친일파 대신의 제거와 산림개발권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항하여 보안회를
조직 극력 반대하여 철회시키는 등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 몸 불사른 송수만을 들 수 있죠.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충신과 석학들을 배출한 송문(宋門)은 우리나라의 유수한 명문(名門)이죠.

계(戒) 자손(子孫) 독서수행(讀書修行)하고, 성심봉선(誠心奉先)하라는 위대한 선조들의 교훈을 받들어 송문(宋門)의 가훈으로 삼고 가문의 교훈을 널리 계승발전시키고저 여기 유래비를 세워 선조들께 바치고 후손들에게 전합니다.
 
 

 

https://youtu.be/ECkldM24ZxM?si=iyddSj9hN0Tr4nZV

https://youtu.be/Pf2Wke_oYp8?si=8W2kkcfjkkPlrC2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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