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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주(월성)손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경주(월성) 손씨
성씨 손(孫)
작품명 영명(永鳴)
조각가 손영준
조형물번호 100
먼저 경주(월성)손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경주(월성) 손씨
성씨 손(孫)
작품명 영명(永鳴)
조각가 손영준
조형물번호 100
먼저 경주(월성)손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의 현대적인 이미지의 석종은 자신의 뿌리를 되찾게 해 줄 것이며, 좌대는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원형을 띠고 있습니다.
3개의 기둥은 각각 충효(忠孝), 공경(恭敬), 번창(繁昌)을 상징함으로써 과거의 충효사상을 본받아, 현재에 웃어른을 공경하고, 미래로 번창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개의 기둥은 각각 충효(忠孝), 공경(恭敬), 번창(繁昌)을 상징함으로써 과거의 충효사상을 본받아, 현재에 웃어른을 공경하고, 미래로 번창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동적인 조형과 리듬감을 준 108개의 면은 석종소리의 마디마디를 표현한 것이며, POST의 삼각형 구도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부여하고 있죠. 이에 자손만대 번창하는 문중의 기개는 영원히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울려 퍼질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경주손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삼한시대의 진한(辰韓)은 6부촌으로 형성된 국가였는데 이 부족국가가 연맹하여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칭하니 곧 신라의 건국인 것입니다. 신라 제3대 유리왕9년(서기32년)에 6부 촌장들에게 성(姓)을 하사하니 그중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는 손(孫)씨로 사성(賜姓)되었으므로 여기서 손씨가 시작된 것입니다.
손씨의 세계(世系)는 경주(월성)·밀양·평해로 관향을 달리하면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모두 구례마를 원조(元祖)로 하고 신라 대효(大孝)이신 손순(孫順)을 중시조(中始祖)로 합니다.
그 후 다시 세계(世系)가 전하지 않는 채 손아(孫阿), 손장(孫藏), 손보(孫甫) 세분이 고려 때 대관(大官)으로 전해올 뿐 경주손씨 족보는 고려 말 1세 손경원(孫敬源), 2세 손현검(孫玄儉) 선조를 비롯하여 조선 초기에 3세 감찰공 손등(監察公 孫登)을 위시하여, 계성군 손사성(雞城君 孫士晟), 계천군 양민공 손소(鷄川君 襄敏公 孫昭), 월성군 경절공 손중돈(月城君 景節公 孫仲暾)은 3대 봉군(三代封君)이요 양대(兩代) 시호(諡號)의 집안으로 이어오는 명문이며 위 군호(君號)는 모두 경주란 뜻입니다.
손사성(孫士晟)은 세종 때 집현전 교리로서 한글창제에 참여한 학문과 외교에 명성이 높았고, 손소(孫昭)는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이시애 난을 평정하는데 참여한 적개공신(敵愾功臣) 이조참판(吏曹參判)이죠.
손중돈(孫仲暾)은 문과에 올라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으며 상주목사 재직 시 선정에 감흠(感欽)한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세워 화상(畵像)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고 선정비도 세워 공덕을 기렸습니다. 또한 청백리로서 우리나라 유학의 학통을 이어받은 현인이죠.
전통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는 경주손씨 대종가가 서기 1457년도에 건립되어 현존하고 있습니다. 대종가는 오랜 세월 전통적인 가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당호를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松簷)이라 하며 국가 지정문화재로 되어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경주손씨는 68,486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삼한시대의 진한(辰韓)은 6부촌으로 형성된 국가였는데 이 부족국가가 연맹하여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칭하니 곧 신라의 건국인 것입니다. 신라 제3대 유리왕9년(서기32년)에 6부 촌장들에게 성(姓)을 하사하니 그중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는 손(孫)씨로 사성(賜姓)되었으므로 여기서 손씨가 시작된 것입니다.
손씨의 세계(世系)는 경주(월성)·밀양·평해로 관향을 달리하면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모두 구례마를 원조(元祖)로 하고 신라 대효(大孝)이신 손순(孫順)을 중시조(中始祖)로 합니다.
그 후 다시 세계(世系)가 전하지 않는 채 손아(孫阿), 손장(孫藏), 손보(孫甫) 세분이 고려 때 대관(大官)으로 전해올 뿐 경주손씨 족보는 고려 말 1세 손경원(孫敬源), 2세 손현검(孫玄儉) 선조를 비롯하여 조선 초기에 3세 감찰공 손등(監察公 孫登)을 위시하여, 계성군 손사성(雞城君 孫士晟), 계천군 양민공 손소(鷄川君 襄敏公 孫昭), 월성군 경절공 손중돈(月城君 景節公 孫仲暾)은 3대 봉군(三代封君)이요 양대(兩代) 시호(諡號)의 집안으로 이어오는 명문이며 위 군호(君號)는 모두 경주란 뜻입니다.
손사성(孫士晟)은 세종 때 집현전 교리로서 한글창제에 참여한 학문과 외교에 명성이 높았고, 손소(孫昭)는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이시애 난을 평정하는데 참여한 적개공신(敵愾功臣) 이조참판(吏曹參判)이죠.
손중돈(孫仲暾)은 문과에 올라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으며 상주목사 재직 시 선정에 감흠(感欽)한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세워 화상(畵像)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고 선정비도 세워 공덕을 기렸습니다. 또한 청백리로서 우리나라 유학의 학통을 이어받은 현인이죠.
전통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는 경주손씨 대종가가 서기 1457년도에 건립되어 현존하고 있습니다. 대종가는 오랜 세월 전통적인 가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당호를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松簷)이라 하며 국가 지정문화재로 되어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경주손씨는 68,486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SAKAL4yqOtjtIO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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