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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영암 김씨(靈岩金氏) 시조, 김숙(金淑), 영암김씨 조상인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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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김씨(靈岩金氏) 시조, 김숙(金淑), 영암김씨 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암김씨(靈岩金氏)는 시조(始祖) 김숙(金淑)이 고려(高麗) 명종(明宗 : 제19대 왕, 재위기간 : 1170~1197) 때 호남 염찰사(湖南廉察使)로 영암(靈岩)에 침입(侵入)한 왜적(倭賊)을 토평(討平)하는 데 공(功)을 세워 영암군(靈岩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영암(靈岩)으로 삼게 되었다

영암(靈岩)은 전라북도(全羅北道) 서해안(西海岸)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멀리삼한시대(三韓時代)와 백제(百濟) 때에는 월내군(月奈郡)으로 불리웠고,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와서 영암군(靈岩郡)이 되었으나 서기 995년(고려 성종 14)에 낭주군(郎州郡)이라 개칭되기도 하였으 며, 1096년(고종 33) 다시 영암으로 복칭(複稱)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始祖) 숙(淑)의 아들 세정(世貞)이 고려때 정2품 관직인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명성을 나렸으며, 손자(孫子) 융(隆)은 지후(祗侯)를 지냈고, 증손(曾孫) 한빈(漢斌)은 첨의평리(僉議評理 : 첨의부의 정2품 벼슬)를 역임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오른 호묵(浩黙)과 현감(縣監) 삼택(三宅)이 유명했고, 1543년(중종 2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한 희련(希鍊)은 공조 좌랑(工曹佐郞)과 교리(校理)를 거쳐 평안 평사(平安評事 : 함경도와 평안도에 한 명씩 두었던 정6품 무관직)로 나갔다.

그외 인물로는 군수(郡守)를 역임한 응권(應權)과 정언(正言)을 지낸 의선(義善), 부승지(副承旨) 영환(永煥)등이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영암김씨는 전국에 총 2,55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영암김씨조상인물

김세정(金世貞) 고려에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김 융(金 隆) 고려(高麗) 때 지후(祗侯)를 냈다.

김한빈(金韓斌) 고려(高麗) 때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역임하였다.

김호묵(金好黙) 조선(朝鮮) 때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옥되었다.

김삼택(金三宅) 자(字)는 대제(大帝). 1534년(중종 2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삼달(金三達) 자는 태준(太준). 조선 때 교서관 박사(校書館博士)를 역임했다.

김희련(金希鍊) 자(字)는 정중(精中), 호(號)는 석맥(石麥). 진사(進士)로서 1543년(중종 3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공조좌랑(工曹佐郞)․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김응권(金應權) 자(字)는 평보(平甫). 조선조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의선(金義善) 조선조(朝鮮朝)에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역임하였다.

김영환(金永煥) 조선때 부승지(副承旨)를 역임하였다.

출처 : 한국성씨총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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