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경씨(淸州慶氏) 시조, 경진(慶珍), 청주경씨 조상인물
청주경씨의 연원(淸州慶氏의 淵源)
청주경씨는 중국 중원 하내(河內)에 연원(淵源)을 두었던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공족인 강태사(姜太士)의 후예라고 전한다. 경(慶)씨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40여 년 전인 고려 광종(光宗) 11년(서기 960년) 중국에서 노국공주(魯國公主) 의 배신(陪臣)으로 건너온 팔학사(八學士)중 한사람인 경경(慶鏡)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경경은 호를 암곡(巖谷) 또는 초수(樵叟)라 하였고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태부 문하시중 평장사(太傅 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공(公)의 인품이 맑고 절조를 지키며 따뜻하고 어질다하여 정의 (貞懿)라 하였다.
그러나 경(慶)씨는 그로부터 약 200여 년간 사실(史實)과 연대(年代)가 역사에 빠져 있어 상고(詳考)할 수가 없으며 고려 명종(明宗)조에 청주에 근거하고 벼슬이 정의광정대부(正議匡正大夫)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 平章事)를 지낸 진(珍)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경진 (慶珍)의 아들은 대장군 경대승(慶大升)이다. 경대승은 26세의 청년장군으로 고려의종(毅宗)조에 반역(反逆)을 한 무신들이 조정을 장악한 후 정사를 농단(農壇)하고 횡포가 극에 달하고 있을 때(정중부의 난 또는 무신의 난) 정중부 일파를 제거함으로서 실권을 한손에 잡았으면서도 전 재산을 군부에 헌납하고 벼슬도 사양하면서 튼튼한 왕실(王室)과 백성이 편히 살수 있는 밝은 세상을 만들고자 애쓰다가 30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 하였다.
이에 따라 경대승에게 어린 자녀가 있었으나 무신들의 화(禍)를 피하여 깊이 은거(隱居)한 까닭에 30여 년간 세계(世系)가 분명치 못하므로 고려 고종(高宗)조에 정의대부(正議大夫) 호부상서 평장사(戶部尙書 平章事)를 지낸 경번(慶蕃)을 1세조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경(慶)씨가 본관(本貫)을 청주(淸州)로 하게 된 것은 시조를 비롯하여 누대(累代)에 걸처 살아온 발상지가 청주이며 4세 경복홍(慶復興)이 공민왕(恭愍王)조에 신돈 (辛旽)에 의하여 조정이 어지러울 때 이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등 좌시중(左寺中)을 거처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면서 바른 정사를 펴기에 애씀으로써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의 작호(爵號)를 받음에 따라 그 후손들이 본 관을 청주로 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5세 경의(慶儀)가 조선 초에 청백리(淸白吏)로 청백록(淸白錄)에 녹선(錄選)되는 등 대(代)를 이어 바른 길을 걸었으며 그 후손들 또한 한결같이 정의(正義)의 편에 서서 살아온 명문혈족(名門血族)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청주경씨는 전국에 12,47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5FQjOwzQTyDBZm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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