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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가평 간씨(加平 簡氏), 시조 간균(簡筠)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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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간씨(加平 簡氏), 시조 간균(簡筠)

 

-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가평간씨(加平簡氏)는 문헌(文獻)에 중국(中國) 범양(范陽) 간 백(簡伯)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상계(上系)를 정확하게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연원(淵源)을 알 수 없다.

간씨(簡氏)의 본관(本貫)은「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가평(加平)을 비록하여 남양(南陽)․서산(書算)․경주(慶州)․인동(忍冬) 등 9본(本)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가평(加平)을 제외한 관향(貫鄕)은 미상(未詳)이다.

가평(嘉平)은 경기도 중동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고구려(高句麗)때 근평군이었으나,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때 부근의 조종현(朝宗縣)과 합하여 가평(加平)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高麗) 때는 강원도(江原道) 춘천(春川)에 속하였다.

1507년(중종 2) 이 곳에 중종(中宗)의 태(胎)를 묻은 연유로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1895년(고종 32) 다시 경기도로 이속되면서 한성부(漢城府)에 속하기도 하였다.

「가평간씨세보(加平簡氏世譜)」에 의하면 시조 간균(簡筠)은 1164년(고려 의종 18)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하고, 1189년(명종19) 벼슬에서 물러나 경기도 풍덕 백후동(豊德栢後洞)으로 낙향(樂鄕)하여 시문(詩文)을 벗삼아 저서(著書)로 일생(一生)을 마쳤다고 한다.
그후 그의 손자(孫子)인 주(株)가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가평군(加平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가평(加平)으로 하게 되었다.

-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고려(高麗) 때 군기감사(軍器監事)를 지낸 유(有)를 비록하여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만호(萬戶)을 지낸 홍(弘:호은 금헌)과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통명(通明)이 유명했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세종(世宗) 때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사열(思裂)․공열(恭悅), 통정대부(通政大夫) 충국(忠國),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충기(蟲氣),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기린(麒麟) 등이 뛰어났다.

-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가평간씨는 전국에 총 2,39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hmCjh_APpb_rd5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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