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천 이(李)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을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인천 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조형물의 의미
조각가 이경아
조형물번호 196
먼저 인천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인천이씨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씨족이요, 아득한 원대(遠代)의 뿌리는 가락국의 김수로왕(金首露王)입니다. 김해김씨(金海金氏), 허씨(許氏), 인천이씨(仁川李氏)는 같은 혈통이죠. 그 후예는 가락국의 철기문화를 꽃피웠고, 신라의 번영과 삼국통일에 이바지 했습니다.
특히 인천이씨는 130여년간 고려왕조의 중흥을 이루고 조선왕조의 기반을 닦는데 기여하였으며, 그 기운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찬연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천이씨는 우리 역사와 명운을 함께 해 온 중추씨족임을 상기시키는 뜻에서 한반도와 그 중심축에 ‘仁川李氏(인천이씨)’를 새겼으며, 주변석의 상승구도와 상단의 원형은 우리 씨족과 더불어 모든 민족성원들이 지향해야 할 통합과 평화를 상징한 것입니다.
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와옥(瓦屋)은 시조의 묘역(墓域 : 蓮化浮水形)과 원인재(源仁齋,인천지방문화재)가 있는 인천을 가리킨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인천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인천이씨는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예로 비조(鼻祖)인 신라 병마사대광(兵馬使大匡) 허기(許奇)가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녹산(安綠山)의 난으로 피난간 당 현종(玄宗)을 호위한 공로로 황제의 성인 이씨(李氏) 성을 하사받고 황제가 신라 경덕왕에게 전하는 오언십운시(五言十韻時)를 갖고 돌아와서 소성백(邵城伯)이 되었습니다.
그 자손이 대대로 소성(邵城: 현재의 인천)에 살다가 고려 8대 현종(顯宗)조에 이르러 이허겸(李許謙, 配 신라 경순왕의 손녀)이 식읍 천오백 호의 소성후(邵城候)에 봉해지면서 '소성(邵城)'을 본관으로 하고 그를 시조(始祖)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천이씨의 고려의 중추씨족으로서 열네분의 왕비와 여덟 분의 왕을 배출하여 130여년간 통일된 고려의 중흥을 주도하였으니 그 후예가 이룬 사적을 어찌 이곳에 다 담을 수 있으리오.
지금의 인천도 왕비와 왕이 배출된 경사의 근원지라하여 당초의 소성(邵城)에서 경원(慶源), 인주(仁州) 또는 어향(御鄕)으로 불리게 되었고, 우리 인천이씨의 본관 또한 ‘소성(邵城)-> 경원(慶源)→인주(仁州)→ 인천(仁川)'으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어져오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인천이씨는 83,855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VxsWyQfrQwNMlM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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