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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순흥 안(安)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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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순흥 안(安)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순흥안씨
성씨안(安)
작품명
조각가安容植
조형물번호104

먼저 순흥안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책모양의 작품은 학문을 숭상한 선조의 예로서 우리 모두 책을 가까이하여 마음의 양식을 쌓고 진리가 있음을 깨달으며 선현의 뜻을 되새기고 학문을 넓혀 나아가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과 인류사회에 널리 공헌하자는 뜻을 담았죠.

상징은 한자의 안(安)자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뜻은 천지인(天地人)을 바탕으로 하여 위의 원은 우주를 향하여 뻗어가는 우리의 미래상을 제시하였죠. 가운데 타원형은 오십만 종친이 한울타리에서 결속 숭조 목족하자는 뜻이며, 아래 일(一)은 생명의 모태인 땅을 상징하고 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순흥안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순흥안씨(順興安氏)는 지금의 경북 영주 순흥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 때인 1200년 경 순흥에 거주하였으며 상호군으로 추봉되었습니다. 아들 삼형제 중 장남 안영유(安永儒)는 부사, 차남 안영린(安永麟)은 별장, 삼남 안영화(安永和)는 교서랑이었죠.

이 삼형제의 후손이 22개파로 분파되었고 그후에 많은 학자와 시호(諡號)를 받은 분이 33명, 봉군(封君) 21명, 문과급제(文科及第)자 188명이 배출되었습니다.

시조의 증손인 문성공 회헌(晦軒) 안향(安珦)은 벽상삼한삼중대광 도첨의중찬 수문전태학사(壁上三韓三重大匡 都僉議中贊 修文殿太學士)로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주자학을 도입하고 장학재단인 섬학전을 설립하였으며 고려 말 유학 진흥에 큰 공적을 세웠죠. 이에 국왕은 문성(文成)이란 시호를 내려 문묘(文廟)에 배향하게 하고 영정을 그려 순흥향교에 모시게 하였으며 이 영정은 국보 제11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소수서원에 소장되었죠.

문의공(文懿公) 질재(質齋) 안문개(安文凱)는 삼중대광 좌정승 지공거(三重大匡 左政丞 知貢擧)를 역임하며 충숙왕과 원나라에서 억류생활까지 하면서 고려의
국난극복에 힘썼죠.

증손 안준(安俊)은 고려 말 충신이며 안홍국(安弘國) 안위(安衛)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명장이죠. 문정공(文貞公) 근재(謹齋) 안축(安軸)은 첨의찬성사를 역임하며 경기체가인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을 지어 국문학사에 크게 이름을 떨쳤습니다.

아들 문간공(文簡公) 안종원(安宗源)은 조선조 판문하부사이며 손자 안경공(安景恭)은 조선 개국에 참여 개국원훈공신이 되었죠. 증손 안순(安純)은 세종때 호조판서를 12년 역임하며 난시제민의 큰 공을 세웠습니다.

순흥 읍내리에 안석(安碩)·안축(安軸)·안보(安輔)·안집(安輯) 4부자가 쓰던 우물이 사현정(四賢井)으로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관향 순흥에서는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죽계천이 피로 물들게 한 참혹한 화를 입었고 한양에서는 여러 사화로 인하여 많은 분들이 화를 입거나 전국 각지로 흩어졌죠.

그 중에서 안천보(安天保) 안방준(安邦俊)등은 올곧은 선비이며 명재상으로 유명했죠. 특히 근세에 이르러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安重根)의사, 민족의 스승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선생 안익태(安益泰) 등은 나라가 암울하던 시절에 한민족의 정신과 기개를 드높였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순흥안씨는 52만384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2k0LldxhTOY?si=juKx6JI7ziYUvm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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