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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안동 권(權)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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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동 권(權)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안동 : 권씨
성씨 : 권(權)
작품명 : 崇祖와 繁榮
조각가 : 于鍾權
조형물번호 : 102

먼저 안동권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대전 뿌리공원에 안동권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은 숭조와 권문의 번영과 화합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안동권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시조 태사공(太師公)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본명은 신라의 종성 김행(金幸)이었습니다. 권행은 신라 말 경애왕 때 고창(지금의 안동)을 수비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죠. 당시 신라는 계속되는 왕의 실정으로 민란이 자주 일어나 국운이 기울어지자 서기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입하여 왕을 시해하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당시 고창군 별장이었던 김행(金幸)은 서기 930년(경순왕 4년) 이 고을의 성주인 김선평(신안동김씨 시조), 장길(안동장씨 시조, 다른이름 장정필)과 뜻을 같이 하고, 향병을 모아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고창군 병산(지금의 안동 와룡면 서지리)에서 견훤의 대군을 격파하고, 일명 '병산대첩'에서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사람이죠.

김행(金幸)의 공을 크게 여긴 태조 왕건은 김행에게는 수훈이 크다 하여, "능병기달권"(能炳機達權: 김행은 기미(機微)에 밝고 정세를 밝게 판단해 권도에 통달했다)이라며 권씨성(權氏姓)을 하사(下賜)하였다고, 문헌 전고대방(典故大方)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조 왕건은 권행을 '삼한벽상아부공신(三韓壁上亞父功臣)'에 책록하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태사(太師)에 제수한 후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고, 고창군 별장이었던 권행(權幸)에게 안동부를 식읍으로 하사하였죠. 이후 권행은 안동권씨의 시조가 되고 안동을 본관으로 하였습니다. 시조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능동에 있으며 세향(歲享)은 춘추로 한식날과 10월 중정(中丁)의 날에 거행하고 있습니다.

안동권씨 파(派)종회는 15대파로 나뉘는데 종파(宗派)를 위시하여 부호장공파(副戶長公派), 추밀공파(樞密公派), 복야공파(僕射公派), 동정공파(同正公派), 좌윤공파(佐尹公派), 별장공파(別將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 급사중공파(給事中公派), 중윤공파(中允公派), 군기감공파(軍器監公派), 정조공파(正朝公派), 호장공파(戶長公派), 검교공파(檢校公派) 등이 있습니다.

안동권씨는 최고와 최초의 수식어가 어디든지 따라 붙고 있죠. 안동권씨의 성화보는 1476년(성종 7년)에 제작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입니다. 또한 안동권문은 최초 기로소, 최초 호당, 최초 문형, 최초 당대 9봉군 등으로도 유명하죠.
우리나라 권씨(權氏)는 조선씨족통보 등의 문헌에는 총 60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안동과 예천을 제외한 본관은 세거지명이라고 합니다.

안동권씨는 상신 40명, 공신 86명, 문형 6명, 봉군 69명을 배출하였으며, 조선조에서 10명의 장원급제자를 포함하여 문과에 367명, 무과에 99명, 사마시에 913명 등 1,398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여 명성을 떨쳤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안동권씨는 696,317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DF7Z9cM4r7w?si=QOBX7Zhn7wSq1i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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