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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안악 김씨(安岳金氏) 시조, 김영(金塋), 안악김씨 조상인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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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김씨(安岳金氏) 시조, 김영(金塋), 안악김씨 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안악 김씨(安岳金氏)의 시조(始祖) 김영(金塋)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이며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功臣)에 책록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진 김 균(金 稛)의 증손(曾孫) 김승경(金升卿)의 둘째 아들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단종조(端宗朝)에서 사옹원 직장(司饔院直長 : 어선 및 대궐 안의 공궤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종 7품 벼슬)을 지내다가 단종이 영월(寧越)로 유배(流配)당할 때 호종(扈從) 하고 돌아와 세조(世祖)의 혼탁한 정치의 와중(渦中)에 강화(江華)로 귀양갔으나, 1464년(세조 9) 풀려나와 성종조(成宗朝)에서 안악군(安岳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영(塋)을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안악(安岳)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영(塋)의 아들 윤조(胤祖)가 찰방(察訪)을 지내고, 손자(孫子) 농(曨)은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여 가문(家門)을 일으켰다.

안악(安岳)은 황해도(黃海道) 북서부(北西部)에 있는 지명(地名)으로 한사군(漢四郡)때에는 소명현(昭明縣)이었던 것을 고구려(高句麗) 시대에 양악군(楊岳郡)으로 고쳤다가 신라(新羅)에서 정구진(長口鎭)을 두었다.

그후 고려초(高麗初)에 안악(安岳)으로 개칭하고 1018년(현종 9) 풍주(豊州)에 편입시켜 예종(睿宗)이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608년(선조 41)에 군(郡)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별칭(別稱)으로 양산(楊山)이라고도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빛낸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영(塋)의 증손(曾孫) 응상(應祥)이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죄인을 추궁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 2품 벼슬)를 지냈으며, 수(秀)는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했다.

한편 환(環)의 아들 홍찬(弘讚)은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이르러 강동파(江東派)의 파조(派祖)가 되었고, 평산 부사(平山府使)와 안악 군수(安岳郡守)를 역임한 양(陽오)은 승지 종(宗), 중추부사(中樞府事) 자약(自躍)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의 통계에 의하면 안악김씨는 남한에 총1,26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안악김씨조상인물

김윤조(金胤祖) 조선(朝鮮) 때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김 농(金 曨) 자(字)는 성서(聖瑞). 조선 때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김응상(金應祥) 조선 때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김 수(金 秀) 조선에서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이르렀다.

김 양(金 陽) 조선조(朝鮮朝)에 평산 부사(平山府使)겸 안악 군수(安岳郡守)를 지냈다.

김홍찬(金弘讚) 조선 때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 종(金 宗) 조선(朝鮮)에서 승지(承旨)를 지냈다.

김준일(金俊一) 자(字)는 광희(光熙). 조선조에 만호(萬戶)를 지냈다.

김세겸(金世謙) 조선 때 봉사(奉事)를 역임하였다.

김덕윤(金德潤) 조선에서 주부(主簿)를 지냈다.

김기서(金起西) 조선조(朝鮮朝)에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지냈다.

김자약(金自躍) 자(字)는 군옥(君玉).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정추(金廷秋)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김중휘(金重輝) 조선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출처 : 한국성씨총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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