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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형상은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며 인간의 뿌리가 시조부터 시작되어 가지를 뻣고 번성하여 점차 커다란 거목이 되어감을 표현하였죠. 나무처럼 뻣어나와 그 그늘로서 만인에게 안식과 풍요를 널리 펼치하는 진주하씨(晉州河氏) 문중의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진주하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진주 하씨는 삼한시대 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 저성(著姓)입니다. 그러나 선계(先系)는 동원(同源)이나 세계무전(世系無傳)으로 분파됨이 밝혀지지 아니하여 고려 현종때 증 문하시랑평장사 하공진(河供辰) 공을 시조로 모신 문하시랑공파와 문종 때 사직 벼슬을 지내신 하진(河珍) 공을 시조로 모신 사직공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 문중에는 조선초기 정사 좌명 공신이며 태종 때에 영의정을 지내셨고 종묘에 배향되신 문충공 하륜(河崙) 선생이 있습니다. 세종대왕 때에 영의정으로 명성이 높았고 종묘에 배향되신 문효공 하연(河演) 선생과 세종대왕 때에 무신으로서 진서(陳書)와 진도(陳圖)를 편찬하고 국방에 전념하여 국가의 기틀을 견고히 한 양정공 하경복(河敬復) 명장이 있습니다. 단종임금 폐위를 죽음으로 항거했던 만고충절 사육신 하위지(河緯地) 선생 충렬공에게도 부조지전의 은총이 내려졌죠.
진주 하씨는 고려와 조선시대 나라에 충성하고 성리학과 실학에 우뚝 솟은 선조가 많았는데 조선 초기 공신 하륜 선생과 문신의 사표 하연 선생, 국가 무비를 위해 많은 공을 세우신 양정공 하경복 명장 그리고 충렬의 거상 사육신 하위지 선생 네 분을 주봉으로 모신 것을 우리 하문의 자랑으로 생각하면서 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진주(진양)하씨의 인구는 본관 진주 160,307명, 진양 65,836명으로 총 226,143명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진주 하씨는 고려와 조선시대 나라에 충성하고 성리학과 실학에 우뚝 솟은 선조가 많았는데 조선 초기 공신 하륜 선생과 문신의 사표 하연 선생, 국가 무비를 위해 많은 공을 세우신 양정공 하경복 명장 그리고 충렬의 거상 사육신 하위지 선생 네 분을 주봉으로 모신 것을 우리 하문의 자랑으로 생각하면서 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진주(진양)하씨의 인구는 본관 진주 160,307명, 진양 65,836명으로 총 226,143명으로 파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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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뿌리공원에 건립된 진주 하씨 문중의 유래비에 각자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진양하씨대종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을 아래에 붙입니다.
진양 하 씨 유래(由來)
진양 하 씨의 연원은 아주 오래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地理誌)나 진양지(晉陽誌)에 따르면 하 씨는 삼한(三韓)시대부터 진주지방의 사족(士族)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용은 상고(詳考)할 자료가 없어 알 수 없고, 진주인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고려 성종~현종 연간의 하공진(河拱辰) 공이다. 공(公)은 진주 공북리(拱北里-현 중안동 부근)에서 탄생하셨다고 한다.
문충공 호정(浩亭) 선생께서 조선 정종(定宗) 조(朝)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을, 태종(太宗) 조(朝)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을 받으시고 태종 16년에 선생의 선고(先考) 진양(晉陽)부원군 윤린(允潾) 공의 신도비를 세우셨는데,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비문에서 그 선계(先系)를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전략- 윗대 조상 가운데 고려(高麗) 때 벼슬해서 좌사낭중(左司郞中)을 지낸 휘 공진(拱辰)은 현종(顯宗) 때 공훈이 있어 문하시랑동중서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平章事)에 추증(追贈)되었다. 사문박사(四門博士) 휘(諱) 탁회(卓回)는 고종(高宗 : 1213 - 1259) 때 벼슬했는데, 부모님이 연로하였기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사(博士 : 卓回)가 정재(挺才)를 낳았고, 정재가 남수(南秀)를 낳았고, 남수가 소(邵)를 낳았고, 소(邵)가 휘(諱) 부심(富深)을 낳았는데, 공(公)에게 증조부가 된다. 박사로부터 아래로 4대에 걸쳐 계속해서 과거에 올랐다. 증조부와 그 형님 호(浩) 및 부(扶)도 모두 과거에 올랐다. 나라의 제도에 따라 그 어머니에게 녹(祿)을 지급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조부 휘(諱) 식(湜)은 증순충보조공신(贈純忠補祚功臣)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 진강군(晋康君)이다. 부친 휘(諱) 시원(恃源)은 증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의정부(議政府) 우정승(右政丞) 판병조사(判兵曹事)진강부원군(晋康府院君)이다. -후략”
이에서 비롯하여 진양 하 씨 문하시랑공파(門下侍郞公派)는 공진(拱辰) 공을 시조로 모셨다.
한편, 진주(晉州)를 관향(貫鄕)으로 하는 하 씨(河氏)에는 고려 정종~문종 연간에 사직(司直)을 지낸 하 진(河珍) 공을 시조로 삼은 사직공파(司直公派)와 고려 중엽에 주부(注簿)를 지낸 하 성(河成) 공을 시조로 삼은 단계공파(丹溪公派)가 있다. 사직공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문종(文宗) 때 영의정을 지내고 문종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된 경재(敬齋) 하 연(河演)선생이 있고, 단계공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세조(世祖) 때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이신 충렬공(忠烈公) 단계(丹溪 ) 하위지(河緯地 )선생이 있다.
이상 세 파(派)는 필시(必是) 동원(同源)이지만 분파(分派) 세계(世系)를 알 수 있는 문헌이 없기 때문에 각각 시조(始祖)를 달리 하고 있다. 1451년에 경재(敬齋) 하연(河演) 선생이 쓴 ‘진양하씨 족보서’에서도 필시 동원(同源)이지만 분파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 외 하 씨로는 강화(江華)를 관향으로 하는 강화하씨, 안음(安陰-현 안의)을 관향으로 하는 안음하씨 등이 있었다고 하나 대체로 진양 하 씨에서 분파된 것으로 본다. 하 씨의 관향을 진양(晉陽-현 晉州)이라 한 것은 조선 초 태조가 진주목(晉州牧)을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로 개칭(改稱)한 데서 유래(由來)되었다고 한다(진양하씨 홈페이지 소개 자료).
대전 뿌리공원에 건립된 진주 하씨 문중의 유래비에 각자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진양하씨대종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을 아래에 붙입니다.
진양 하 씨 유래(由來)
진양 하 씨의 연원은 아주 오래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地理誌)나 진양지(晉陽誌)에 따르면 하 씨는 삼한(三韓)시대부터 진주지방의 사족(士族)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용은 상고(詳考)할 자료가 없어 알 수 없고, 진주인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고려 성종~현종 연간의 하공진(河拱辰) 공이다. 공(公)은 진주 공북리(拱北里-현 중안동 부근)에서 탄생하셨다고 한다.
문충공 호정(浩亭) 선생께서 조선 정종(定宗) 조(朝)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을, 태종(太宗) 조(朝)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을 받으시고 태종 16년에 선생의 선고(先考) 진양(晉陽)부원군 윤린(允潾) 공의 신도비를 세우셨는데,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비문에서 그 선계(先系)를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전략- 윗대 조상 가운데 고려(高麗) 때 벼슬해서 좌사낭중(左司郞中)을 지낸 휘 공진(拱辰)은 현종(顯宗) 때 공훈이 있어 문하시랑동중서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平章事)에 추증(追贈)되었다. 사문박사(四門博士) 휘(諱) 탁회(卓回)는 고종(高宗 : 1213 - 1259) 때 벼슬했는데, 부모님이 연로하였기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사(博士 : 卓回)가 정재(挺才)를 낳았고, 정재가 남수(南秀)를 낳았고, 남수가 소(邵)를 낳았고, 소(邵)가 휘(諱) 부심(富深)을 낳았는데, 공(公)에게 증조부가 된다. 박사로부터 아래로 4대에 걸쳐 계속해서 과거에 올랐다. 증조부와 그 형님 호(浩) 및 부(扶)도 모두 과거에 올랐다. 나라의 제도에 따라 그 어머니에게 녹(祿)을 지급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조부 휘(諱) 식(湜)은 증순충보조공신(贈純忠補祚功臣)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 진강군(晋康君)이다. 부친 휘(諱) 시원(恃源)은 증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의정부(議政府) 우정승(右政丞) 판병조사(判兵曹事)진강부원군(晋康府院君)이다. -후략”
이에서 비롯하여 진양 하 씨 문하시랑공파(門下侍郞公派)는 공진(拱辰) 공을 시조로 모셨다.
한편, 진주(晉州)를 관향(貫鄕)으로 하는 하 씨(河氏)에는 고려 정종~문종 연간에 사직(司直)을 지낸 하 진(河珍) 공을 시조로 삼은 사직공파(司直公派)와 고려 중엽에 주부(注簿)를 지낸 하 성(河成) 공을 시조로 삼은 단계공파(丹溪公派)가 있다. 사직공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문종(文宗) 때 영의정을 지내고 문종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된 경재(敬齋) 하 연(河演)선생이 있고, 단계공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세조(世祖) 때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이신 충렬공(忠烈公) 단계(丹溪 ) 하위지(河緯地 )선생이 있다.
이상 세 파(派)는 필시(必是) 동원(同源)이지만 분파(分派) 세계(世系)를 알 수 있는 문헌이 없기 때문에 각각 시조(始祖)를 달리 하고 있다. 1451년에 경재(敬齋) 하연(河演) 선생이 쓴 ‘진양하씨 족보서’에서도 필시 동원(同源)이지만 분파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 외 하 씨로는 강화(江華)를 관향으로 하는 강화하씨, 안음(安陰-현 안의)을 관향으로 하는 안음하씨 등이 있었다고 하나 대체로 진양 하 씨에서 분파된 것으로 본다. 하 씨의 관향을 진양(晉陽-현 晉州)이라 한 것은 조선 초 태조가 진주목(晉州牧)을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로 개칭(改稱)한 데서 유래(由來)되었다고 한다(진양하씨 홈페이지 소개 자료).
https://youtu.be/qflsf-FgbTI?si=xh8qwAl4huBHS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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