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 관직 용어

관구(管句)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5. 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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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管句) 고려 때 국자감(國子監) 보문각(寶文閣)에 두었던 정3품 관직.

정의

고려시대, 국자감과 보문각 등에 소속된 관직.
설치 목적

관구(管勾)는 제각(諸閣)에 학사직(學士職)과는 별도로 송제(宋制)를 참고하여 설치된 것으로 이해된다. 연혁은 분명치 않으나, 국자감(國子監)의 경우 문종 때 제거(提擧), 동제거(同提擧) 등의 관직과 함께 2명의 관구를 두었다. 또 예종(睿宗) 때에는 보문각(寶文閣)에도 관구와 함께 부관인 동관구(同管句)를 둔 바 있다. 보문각의 경우 중추내신(中樞內臣)에게 관구나 동관구를 임명하였다고 하므로, 주로 타관을 임명하는 겸직으로 운영되었다. 중추원(中樞院)의 관직자를 임명하였다는 것에서 보문각에 대한 국왕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임무와 직능

이들의 정확한 직무는 잘 알 수 없으나, 소속 관사의 기능인 학문 연구와 교육 활동을 보조하는 행정적 사무, 특히 재정 업무를 주관하는 실무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종이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하면서 근시(近侍)주1를 보내 그 사무를 관구하게주2 하였는데, 여기에서 행정 사무를 담당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역할이나 그 사람을 관구로 표현한 사례는 더 찾을 수 있다. 1145년(인종 23) 김부식(金富軾)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할 때 우승선(右承宣) 정습명(鄭襲明)과 내시(內侍) 김충효(金忠孝)가 각각 관구 및 동관구로 참여한 일이 있고, 의종(毅宗)  흥왕사(興王寺)의 관구로 내시를 임명한 적도 있다. 이로 보아 관구는 국자감이나 보문각만이 아니라 특정 임무의 수행을 위한 기구나 담당관으로 설치한 관직임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관구는 역시 행정적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 (신서원, 200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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