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안성 김씨(安坂城金氏) 시조, 김재영(金再英)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5. 1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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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김씨(安坂城金氏) 시조, 김재영(金再英)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안성 (安城)은 본래 고구려의 나혜홀(奈普忽)로써 신라 26대 진평왕 때 고구려로부터 나혜홀을 빼앗아 안성이라 하였다가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 백성군(白城郡)이라 하였으며, 고려초에 다시 안성현(安-城縣)이라 하였다.

고려 현종(顯宗)9년(서기 1018년)에는 수주)에 예속되었다가 후에 천안부(天安府)에 이속되었다. 고려 명 종(明宗)11년(서기 1181년)에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조선 왕조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조선 왕조 태종(太 宗)13년(서기 1413년)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안성김씨 (安坂城金氏)의 시조(始祖)는 휘 (諱) 재영 (再 英)으로 경주김씨의 시조이신 휘 (諱) 대보공(大輔公) 알지(開智)의 16대손으로 기록에 따르면 서기 606년경 출생으로 추정되며,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 王:재위기간 579-632)때 대아간(大阿干)으로 자질이 뛰어나고 매우 영특하여 왕이 매우 총애하였다.

백제와 싸워 큰 공을 세우니 진평왕은 외삼촌 국반(國飯) 갈문왕의 딸 승만(勝燮)즉 진덕공주(眞德公主 : 후에 진덕여왕으로 서기647년에서 654년까지 8년간 재 위)과 혼인시키고 또 고구려의 나혜올(奈輔忽)을 빼앗으니 안성군(安城郡)으로 칭하여 휘재영(諱再英)을 안성군(安城君)에 봉하였다. 신하를 봉후에 봉한 것은 우리 역사상 최초이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 진덕여왕의 자식은 성골(聖骨)이 아니어서 자연적 왕위계승이 아니 되고, 추대회의에서 진골(眞骨)출신 김춘추(金春秋)가 태종무열왕(太宗武烈 王)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세계(世系)가 전해져 오지 않았으나, 고려조에 금자광록대부상서좌복사(金紫光綠大夫尙書左僕射) 돈(敬)이라는 사람이 안성군(安城君)의 후예라고 밝혀지면서 이 후 안성 김씨 (安:城金氏)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일 세조(一世祖)로 세계(世系)가 정리되고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안성김씨는 전국에 1,4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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