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함양 여(呂)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5. 3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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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함양 여(呂)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함양여씨
성씨 여(呂)
작품명 번영(繁榮)의 상(像)
조각가 남 철 (충남대학교 예술대 교수)
조형물번호 31
먼저 함양여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에서 양쪽의 날개와 같은 하늘을 향한 대칭구조는 무한한 공간을 향한 영원한 미래의 번영을 상징하는 인체의 추상체입니다. 중심구의 원구는 꿈과 희망이 응집된 표상이며 변함없는 응집된 충절의 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한 포근히 감싸는 외곽의 메스(mass)는 한국 고유의 원만하고 은은한 곡선을 형성하면서 따스한 사랑과 효심을 상징하며 단합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양쪽의 날개와 같은 하늘을 향한 대칭구조는 무한한 공간을 향한 영원한 미래의 번영을 상징하는 인체의 추상체입니다. 중심구의 원구는 꿈과 희망이 응집된 표상이며 변함없는 응집된 충절의 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한 포근히 감싸는 외곽의 메스(mass)는 한국 고유의 원만하고 은은한 곡선을 형성하면서 따스한 사랑과 효심을 상징하며 단합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함양여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양여씨(咸陽呂氏)는 신라말기부터 고려조를 거쳐 근세 조선 500년간 우리 민족과 나라를 아끼고 사랑해온 민족 구성원의 명문족의 하나죠. 함양여씨의 시조는 여어매(呂御梅)이며 단기 3210년경(통일신라 헌강왕 877년) 중국 당나라의 황소난을 피해 신라에 도착하여 함양을 세거지로 삼아 창성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조 전서공(典書公) 여어매(呂御梅)의 제단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2세조 여임청(呂林淸)은 고려진국대장군(高麗鎭國大將軍)으로 북방수호에 헌신하였으며 그의 묘소 또한 시조제단 하에 모셔져 있죠. 고려조 금자광록대부 지문하성사판삼사사공(金紫光祿大夫 知門下省事判三司事公) 5세조 여위황(呂渭璜)의 묘단은 전북 김제군 용지면 장신리에 있습니다.
함양여씨(咸陽呂氏)는 신라말기부터 고려조를 거쳐 근세 조선 500년간 우리 민족과 나라를 아끼고 사랑해온 민족 구성원의 명문족의 하나죠. 함양여씨의 시조는 여어매(呂御梅)이며 단기 3210년경(통일신라 헌강왕 877년) 중국 당나라의 황소난을 피해 신라에 도착하여 함양을 세거지로 삼아 창성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조 전서공(典書公) 여어매(呂御梅)의 제단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2세조 여임청(呂林淸)은 고려진국대장군(高麗鎭國大將軍)으로 북방수호에 헌신하였으며 그의 묘소 또한 시조제단 하에 모셔져 있죠. 고려조 금자광록대부 지문하성사판삼사사공(金紫光祿大夫 知門下省事判三司事公) 5세조 여위황(呂渭璜)의 묘단은 전북 김제군 용지면 장신리에 있습니다.
10세조 여칭(呂稱)의 자(字)는 중문(仲文)이고 호(號)는 저곡(樗谷), 시(諡)호 정평(靖平)입니다. 그는 조선 개국의 원훈으로 관직이 자헌대부 지의정부사(資憲大夫 知議政府事)에 이르렀죠. 정평공의 자손중 문·무과 등제자(登第者)가 280여명으로 국가 정치 국방문화창달에 공헌한 바가 큽니다. 정평공의 묘는 개성 대정리에 있으며 300여년전 나라에서 하사한 사우(祠宇)를 청주에 모시고 있습니다.
정평공 여칭(呂稱)의 장남 여계(呂稽)는 관직이 승의랑(承議郞)에 올랐죠. 가선대부 호조참판 여칭은 장남 여종숙(呂宗肅), 차남 여종경(呂宗敬), 삼남 여종주(呂宗周), 사남 여종모(呂宗貌) 오남 여종상(呂宗商)등 5남을 두어 그 자손이 오늘날 이땅에 살고 있는 함양여씨의 거의 대부분이죠. 여계의 묘는 서울 구로구 고척동 산6번지 서울시립공원내에 부인과 아래위에 모셔져 있으며 서울시 금석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여칭의 손자 판서 여자신(呂自新)의 시(諡)호는 정장(貞莊)이며, 여자신의 아들 여윤철(呂允哲)은 절도사에 올랐고, 여자신과 여윤철 부자(父子)는 이 나라 청백리지의 첫머리에 기록되었죠.
영상(領相)에 오른 여순원(呂順元), 동추(同樞) 여여길(呂與吉), 우윤(右尹) 여유길(呂裕吉), 관찰사 여우길(呂祐吉), 도정(都正) 여인길(呂裀吉), 수사(水使) 여지길(呂祉吉)등 5형제가 유명하죠. 군수 여이항(呂爾恒), 참판 여이징(呂爾徵), 부사 여이량(呂爾亮), 현감 여이흥(呂爾興), 영의정 여성제(呂聖齊) 외에도 세세년년히 당대의 국가사회에 업적을 남긴 문신 현관과 민족의 위난시대에 국방에 공헌한 무관공신 등 문무 백관에 봉직한 선대가 많이 있죠.
근세에 있어서 당대 석학으로 학문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던 하정(荷亭) 여규형(呂圭亨)은 도승지에 올랐으며, 민족자주 독립을 지도해온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을 비롯한 국가 정치 경제 사회일선에서 활동해 온 기라성같은 선대들이 한 시대와 역사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34개 소종족으로 분포되어 국가사회 각처에서 활동하는 종중으로 번성한 자손들이 함양여씨대종회 산하에 결속하여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소재한 함양여씨대종회관을 본거로 하여 조상께서 물려주신 계훈 효우(孝友) 돈목(敦睦) 충후(忠厚) 인애(仁愛)의 종훈을 정신적 유산으로 삼고 이를 생활속에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상님들의 위업을 계승하고 각 종중 간의 상호연대와 백년지친의 의(誼)를 다져서 인류를 사랑하고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종족으로서의 번영을 도모하며 함양여씨대종회를 운영하고 있는 의지를 본 종족 후손들에게 주지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본문을 여기에 기록합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함양여씨는 34,835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정평공 여칭(呂稱)의 장남 여계(呂稽)는 관직이 승의랑(承議郞)에 올랐죠. 가선대부 호조참판 여칭은 장남 여종숙(呂宗肅), 차남 여종경(呂宗敬), 삼남 여종주(呂宗周), 사남 여종모(呂宗貌) 오남 여종상(呂宗商)등 5남을 두어 그 자손이 오늘날 이땅에 살고 있는 함양여씨의 거의 대부분이죠. 여계의 묘는 서울 구로구 고척동 산6번지 서울시립공원내에 부인과 아래위에 모셔져 있으며 서울시 금석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여칭의 손자 판서 여자신(呂自新)의 시(諡)호는 정장(貞莊)이며, 여자신의 아들 여윤철(呂允哲)은 절도사에 올랐고, 여자신과 여윤철 부자(父子)는 이 나라 청백리지의 첫머리에 기록되었죠.
영상(領相)에 오른 여순원(呂順元), 동추(同樞) 여여길(呂與吉), 우윤(右尹) 여유길(呂裕吉), 관찰사 여우길(呂祐吉), 도정(都正) 여인길(呂裀吉), 수사(水使) 여지길(呂祉吉)등 5형제가 유명하죠. 군수 여이항(呂爾恒), 참판 여이징(呂爾徵), 부사 여이량(呂爾亮), 현감 여이흥(呂爾興), 영의정 여성제(呂聖齊) 외에도 세세년년히 당대의 국가사회에 업적을 남긴 문신 현관과 민족의 위난시대에 국방에 공헌한 무관공신 등 문무 백관에 봉직한 선대가 많이 있죠.
근세에 있어서 당대 석학으로 학문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던 하정(荷亭) 여규형(呂圭亨)은 도승지에 올랐으며, 민족자주 독립을 지도해온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을 비롯한 국가 정치 경제 사회일선에서 활동해 온 기라성같은 선대들이 한 시대와 역사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34개 소종족으로 분포되어 국가사회 각처에서 활동하는 종중으로 번성한 자손들이 함양여씨대종회 산하에 결속하여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소재한 함양여씨대종회관을 본거로 하여 조상께서 물려주신 계훈 효우(孝友) 돈목(敦睦) 충후(忠厚) 인애(仁愛)의 종훈을 정신적 유산으로 삼고 이를 생활속에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상님들의 위업을 계승하고 각 종중 간의 상호연대와 백년지친의 의(誼)를 다져서 인류를 사랑하고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종족으로서의 번영을 도모하며 함양여씨대종회를 운영하고 있는 의지를 본 종족 후손들에게 주지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본문을 여기에 기록합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함양여씨는 34,835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9U7WU3FZ--M?si=v82pB_10EmLLV-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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