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의 신비로운 탄생을 담고 중심부의 열려진 공간은 영원한 인간상을 상징하죠. 또한 새로운 생명의 도출, 개화, 열매의 형상을 수풀임(林)자의 획에 담긴 우뚝솟은 느낌과 인간의 표정을 담아 보다 풍요로운 세계상을 음, 양의 조화를 통해 형상화한 임씨의 상징물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임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임씨(林氏)는 우리나라 성씨 중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문으로, 우리나라 성씨 중 10위권에 드는 대성이다.임씨는 은나라 태정천자(황제의 32세손)의 아들 비간(比干)의 부인 진씨가 목야 장림산 석실에서 아들(泉)을 낳은바 주나라 무왕이 장림산에서 낳았다 하여 성은 임씨로 이름은 견(堅)으로 정해주었다.
그때부터 임씨 성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임견이 임씨의 1세가 되었다. 그의 후손 임온(林蘊 9목연파의 제6방)의 고손자인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 말엽(서기 840-900년경) 한림학사로 시작하여 병부상서로 재직시 당시 칠학사(七學士)와 같이 신라(지금의 경기도 팽성의 용주방)로 와서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후손들은 도시조 임팔급의 정착지인 팽성 즉, 평택으로 본관을 삼게 되었죠. 그러나 도시조 학사공(學士公) 임팔급 이후의 기록을 잃게 되어, 평택임씨는 자세한 세계(世系)를 알 수 없어, 임세춘(林世春)을 1세조로 받들며 세계를 이어왔죠. 평택임씨는 후대에 와서 선산, 진천, 예천(醴泉), 부안, 울진, 은진(恩津), 순창(淳昌), 경주, 옥야(沃野) 등 25개 관향으로 분관되었습니다.
그러나 관향만 다를 뿐 임팔급(林八及)을 유일조로 하는 같은 혈손이라는 것이 대다수 문중의 공통된 견해이죠.
단, 라주관은 고려대장군 임비(庇)를 1세조로 모시고 후손들이 지금까지 계승하고 있습니다.
임씨 후손들은 세계각국은 물론 한국에서 비록 관향은 다르게 쓰고 있으나 뿌리가 한 조상으로 되어있음으로 서로 돕고 참되고 굳세게 살아가고 있다.